중학교 5년 과정을 힘겹게 마친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대학을 꿈꿨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민하는 모습을 본 모친은 “내가 아직 이렇게 건강한데 동생들과 굶어 죽기야 하겠니. 집 걱정하지 말고 대학에 가거라”고 권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아들인 나에 대한 주님의 뜻이 있을 거란 믿음으로 한 말씀이었다.
철학과를 지망한 나는 일본 도쿄의 조치대학교에 지원해 입학했다. 조치대는 가톨릭계 대학으로 독일 교구에 속해 있었지만, 독문과보다 철학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학교였다. 스콜라철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쳤기에 가톨릭 신부가 되려는 학생들도 철학과에 지망하곤 했다. 후배인 고 김수환 추기경과는 이곳에서 함께 수학한 인연이 있다. 철학도를 자처한 나는 톨스토이를 비롯한 인도주의적 문학책과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등 여러 사상가의 책을 폭넓게 읽었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나를 포함한 한인 유학생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전세가 불리해진 일제가 대학생과 휴학생,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인까지 전장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한인 학생 역시 ‘자원입대’ 대상자가 됐다. 말은 자원이었지만, 실제로는 경찰을 동원해 압박을 넣었다. 일본인들이야 조국을 위한 출정이라지만, 우리로선 원수 국가인 일본의 군인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굴욕감과 울분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일본 경찰과 공무원은 “한인 학생이 일본 학생 못지않게 애국심으로 입대한다”며 선전했다. 많은 한인 유학생이 좌절해 술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생애를 좌우할 중차대한 사건이 닥쳐오자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일간 외부와 연락을 끊고 하숙방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주님의 뜻을 물었다. 요한복음 15장을 읽던 중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게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며 마음에 음성이 들렸다. “주께서 나를 택했다. 그렇다. 내가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주님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곧 책상에 엎드리고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외쳤다. 내가 드린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였다.
이윽고 평안을 되찾았다. 징집이란 폭풍우 속에서도 나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기도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학도병 징집을 위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내과의사가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어릴 때부터 앓던 병이 있느냐”고 물었다. “가끔 의식을 잃곤 했다”고 말한 뒤 몇 가지 질문에 더 답하자 그는 내 서류에 ‘불합격’이라 적었다. 기적적으로 학도병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인 학생 여럿이 군에 끌려가 남태평양이나 중국 전선에 투입됐다. 나라 잃은 민족의 비극이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