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8할의 달리기

입력 2020-12-18 04:08

“아직도 너무 속상해요.” 불안장애를 치료 중인 C씨는 고심해서 예약해놨던 친구와의 약속 장소가 당일 갑자기 문을 닫아 일정이 어긋난 일로 며칠째 속상해했다. 부랴부랴 근방의 다른 장소를 찾았지만 한 번 어긋나버린 일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 친구가 본인에게 어느 정도 잘해주면 괜찮은 친구라고 느끼시나요?” “글쎄요… 한 70~80% 정도요?” “맞아요, 그 정도면 꽤 잘 어울리는 사이일 거예요. 근데 왜 나는 상대에게 100%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항상 100%를 해주려고 애쓰다 하나가 잘못돼 나도 남도 당황하는 것보다는, 내가 남에게 바라는 만큼 상대에게도 그만큼의 노력만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어느 회의 자리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다. 직업 특성상 늘 긴장 가득한 사람일 거란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그는 말투뿐 아니라 행동거지마저 느긋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여유로움에 대해 물었더니 매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 긴장과 피곤이 지나치다 보면 도리어 정작 긴장해야 할 상황에선 최선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고무줄을 늘이기만 하면 막상 그 탄력을 이용해 최고의 에너지를 발휘해야 할 때 탄성을 잃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처럼. 그의 답변을 듣고, 앞으로는 8할만 노력하며 살아보자는 나의 처방에 계면쩍게 웃던 C씨가 떠올랐다.

우리 대다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매순간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휴대폰 배터리나 차의 기름이 바닥날 때까지 혹사시키라는 것과 똑같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상에서 전력질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기록을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몸이 부서져라 달리기보단 20% 정도 힘을 빼고 여유롭게 달려 보는 건 어떨까 싶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