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입력 2020-12-18 17:10

설교 제목은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꼭 자신에게 질문해봐야 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구원을 교리적인 측면에서 기술했다면,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구원을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사귐이며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 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도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구약을 규정지어주셨듯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새번역)라며, 짧지만 명확하게 말합니다.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도 사랑하는 일을 버거워하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게 될 때 이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이요 구원 받았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이처럼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요일 4:20)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증거이며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곳에 거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다시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마땅히 이웃 사랑으로 뜨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이웃 사랑은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서 도와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 안에는 가난한 자들이 있습니까. 영적·관계적·육체적·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잠재적 기독교인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십니까.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어려워하는 이웃이 있습니까.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 비율이 5~10%라는데 교회엔 그들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어려운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 극빈층이 있습니까. 만약 혹시 있다면 이러한 이웃들을 위한 지출은 가정경제에서 얼마나 됩니까. 이러한 이웃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도움과 구제의 행동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가족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가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와 섬김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즉 구원받은 자인 것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 은혜를 맛보게 될 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 레위기 19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19:2)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않아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는 것”이 ‘거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은 어떻습니까.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과 경건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야 합니다. 주변에 보내주신 가난한 이웃들을 구체적으로 구제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이청훈 하늘뜻담은교회 목사

◇하담 가족들과 사랑으로 가득한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마을목회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힘쓰면서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동네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