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렌즈로, 자연과 인간의 양심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다

입력 2020-12-18 03:05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던 비결은 뭘까. 혹자는 그의 천부적 재능과 열정을 떠올릴지 모른다. 미국의 기독 철학자이자 조직신학자인 저자는 이 질문에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베토벤의 업적은 그의 광대한 가계도 덕분”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선조 모두가 지구의 공기를 호흡하고 씨와 비, 햇빛에서 먹고 마실 것을 공급받아 생존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깔리거나 자그마한 바이러스로 사망했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닌 베토벤이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아무도 그에게서 이 업적을 앗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성취는 그보다 훨씬 광대한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홀로 생존에 성공해 문화·역사적 성취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온 세상이 각자 역할대로 제대로 운행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 논리로 베토벤이 업적을 이룬 비결을 설명한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세상의 광대함을 고려할 때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한 공로를 홀로 차지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책에서 저자는 모든 창조세계가 하나님을 증언한다는 ‘자연신학’을 설명키 위해 자연과 인간의 양심에서 창조주의 흔적을 추적한다. 인간 시야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땅과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위대성을 발견한다. 도토리가 일정 조건 아래 참나무가 되듯, 특정 목표대로 설계된 생태계를 보며 하나님의 선과 지혜를 헤아린다.

양심을 ‘인류에 내재한 선악에 관한 실제적 감각’으로 정의하며 하나님이 양심을 통해 인간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양심을 ‘화인 맞은 양심’ ‘고발하는 양심’ ‘깨어난 양심’ ‘선한 양심’으로 나눠 하나님이 양심 상태에 따라 어떻게 증언하는지 설명한다. 범죄자처럼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양심으로 그분의 계시를 전할 수 있다. “범죄자가 윤리적 기준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여도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는 자신이 누군가를 배반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흔히 자연신학은 개신교의 주요 가치인 ‘오직 성경’을 거스르는 분야로 이해되지만, 저자의 입장은 다르다. 저자는 ‘성경적 자연신학’을 추구한다. 책은 저자가 시편 19편과 로마서 1장 말씀을 바탕으로 ‘자연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자연 계시)에 관해 치밀히 논증한 결과물이다. 동시에 자연 계시의 한계도 분명히 짚는다. 창조세계가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줄 순 있지만, 성경처럼 직접 복음을 선포하진 않는다. 신이 존재한다는 전통적 증거를 거부했던 임마누엘 칸트도 자연의 장엄함과 인간 내면의 도덕법에는 경외감을 드러냈다.

성경이란 렌즈로 자연과 인간의 양심에 임재한 하나님을 해석해낸 책이다. 성경에 충실한 ‘복음주의적 자연 신학책’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