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팬데믹 시대… 사람들은 왜 인문예능을 볼까

입력 2020-12-17 04:02
최근 등장한 인문학 예능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 KBS ‘북유럽’은 소설가 김중혁(위쪽)이, tvN ‘벌거벗은 세계사’는 역사 강사 설민석이 지식을 제공하고, 패널들이 시청자를 대변한다. 각 방송사 제공

사람들은 왜 팬데믹 시대에 인문학 예능을 볼까. 최근 인문학 인포테인먼트(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예능)의 잇따른 등장은 코로나19가 야기한 불안 심리에서 비롯됐다.

KBS 2TV에서 최근 선보인 ‘비움과 채움-북유럽’(Book U Love)은 명사에게 책을 기부받아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기획됐다. 비단 도서관 하나 짓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방송 전반을 인문학 토크로 꽉 채운다. 송은이가 MC를 맡고 김숙, 유세윤, 소설가 김중혁이 출연한다.

얼마 전 론칭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화면 속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역사를 파헤치는 콘셉트다. 중심은 역사 강사 설민석이다. 그의 강의가 프로그램을 지탱하고 그 위에 은지원, 존박 등 패널들의 입담이 쌓인다. 첫 비행기는 독일로 향했다. 설민석은 이날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말했다. 강의는 나치 전당대회에서 만들어진 뉘른베르크법부터 유대인 학살까지 이어졌다. 설민석은 “지구는 촌(村)이라, 각국의 산적한 역사 문제를 세계인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은 팍팍한 삶이 이어질 때 그 힘을 발휘한다. 과거와 기록에서 현실을 짚어내 미래의 길잡이가 되는 학문이라서다. 요즘 인문학 예능이 활발하게 소비되는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대중이 불안 심리를 조일 수 있는 지혜를 갈구하고 있어서다. 또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각지에서 열리던 교양 강연이 잇따라 취소된 것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요소가 됐다.

인문학 예능의 인기는 2010년대 초반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타 강사 김미경이나 김창옥을 중심으로 자기계발 등 담론 전달에 머무르는 일방적 강연을 그대로 송출했다. 이후 2017년 tvN ‘알쓸신잡’으로 호황을 맞았는데, 이때부터 역사·문학 등 주제가 다양해졌다. 그리고 출연진이 상호작용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포맷이 자리 잡았다. 당시 인문학 예능의 수는 10여 개에 달했다.

올해 등장한 두 예능은 프로그램의 뼈대가 되는 전문가와 시청자를 대변하는 패널로 구성되는 특징을 보인다. ‘북유럽’은 다독가 송은이가 중심을 잡고, 김중혁이 전문적 지식을 늘어놓으면 김숙과 유세윤이 윤활유를 뿌린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설민석의 강의를 듣는 패널이 시청자와 눈높이를 맞춰 질문을 하며 유연하게 흘러간다. 은지원은 “학교 다닐 때 세계사를 깊게 못 배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며 “책으로는 많은 걸 얻지 못하는데 (설민석의 강의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인문학 예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빠르고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시청자는 이제 검증되지 않는 정보에 멀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공신력 있는 방송에서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신뢰도 높은 정보를 얻으려는 심리가 강해졌다.

인문학이 쉽고 재미있는 예능의 문법으로 전달될 때의 부작용도 있다. 핵심은 균형이다. 전문가에 의존한 나머지 자칫 예능적 요소가 흐려질 수도 있고, 반대로 잘게 쪼개 가져다주는 형식이다 보니 깊이가 부족해질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인문학의 근본이 깨우침과 성찰에 있는 만큼 오락적 해석이 아닌 삶의 방향성을 매만질 수 있는 사고의 방법을 안내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