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과 부동산. 연말을 맞아 되돌아본 올해의 키워드는 이 두 가지일 듯하다. 검찰 개혁과 부동산 문제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두 사안을 대하는 문재인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보면 묘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명운을 걸고 해결해야 할 숙원이자 숙제라는 명분에서 출발한 이 두 사안은 처음엔 선의(善意)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집행 과정과 그 방법은 거칠었다. 비판 여론에는 귀를 닫았고 편법까지 동원했다.
부동산 문제를 보자. 집값이 폭등하고 전세난까지 극심해진 상황에서 나온 정부 대책은 땜질 처방에 그쳤다. 국민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은 정부·여당의 신뢰만 깎아먹었다. 여당의 부동산태스크포스(TF) 단장은 공공임대주택을 찾아선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정작 그 의원은 번듯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동산 정책 주무장관은 호텔방 전세에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했고, 차관은 전세난을 “한 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했다. 경제부총리는 “주택 매수심리 진정세가 주춤한다”는 희한한 화법을 사용했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고 했다. 올해 8월엔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고 했다. 호언장담과 실상이 괴리가 크다면 실책을 인정하고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데 아무 말이 없다. 정부도 여당도 ‘내 탓’ 대신 ‘전 정부 탓’을 한다. 입법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21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는데, 며칠 뒤 여당은 야당 반대에도 말 많고 탈 많은 ‘임대차보호법’을 단독처리했다.
진보 정부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검찰 개혁은 절차 자체에 큰 구멍이 생겼다.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의 요체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수사·기소·영장청구 권한 독점에 따른 여러 폐해를 줄이자는 통렬한 반성에서 나왔다. 공수처도 검찰 권력을 견제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역시 절차는 무시됐다. 1년 전 여당은 범여권과 ‘4+1 협의체’를 만들어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 반대하는 보수 야당에는 공수처장 임명 거부권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1년 뒤 거대 여당은 170석이 넘는 의석수로 밀어붙여 야당 거부권을 없애버렸다. 대통령이나 여당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한 최소한의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는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 “공수처 설치는 성역 없는 수사 등을 위한 오랜 숙원”이라고 했다. ‘성역 없는 수사’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강조했던 말이다. 성역 없는 수사를 한 윤 총장은 이제 적법성 논란이 있는 징계 절차를 통해 식물총장이 됐다. 검찰 개혁은 이제 문재인정부와 여당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돼버렸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과 절차적 공정성·정당성을 얘기한다면 공허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검사 프릿 바라라는 최근 펴낸 저서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에서 “정의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제는 클리셰처럼 돼버린 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사에 새삼 질문을 해본다. 우리는 과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