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맘때쯤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쏟아져 나왔고 언론은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갑론을박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전망치가 여러 차례 수정되며 성장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달 26일 한국은행은 올해 -1.1% 성장에 20만명의 취업자 감소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이는 1998년의 -5.1% 성장, 128만명의 취업자 감소에 비하면 충격의 강도는 훨씬 낮은 편이다. 연말을 무사히 보낸다면 내년에는 3% 성장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한 달도 안 돼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기승을 부려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백신 확보까지 늦어지며 한국경제는 내년 상반기까지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줄타기를 계속하게 됐다.
세간의 관심은 3% 성장이 아니라 코스피지수의 3000 돌파 여부나 부동산 시세에 쏠려 있다. 실물경제 침체를 비웃듯 돈이 돈을 벌고 있는 자산시장 버블은 정부 설명대로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실물경제는 10년 넘게 생산성 증가율과 잠재성장률이 지속 하락하며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지만 정부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구조개혁은 외면한 채 재정을 풀어 성장과 고용지표를 유지하는 데 열중했다. 2019년 2% 성장률의 80%가 재정이 기여한 몫인데 올해와 내년에는 그 비중이 더 커질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정책기조에 모터를 달아준 셈이다. 역대 정부에서 비축해놓은 튼튼한 재정을 밑천으로 올해와 내년 연속해서 100조원 넘는 빚을 내며 경기 방어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런 경제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성장률과 주가 상승만 자랑할 뿐 자산 불평등의 급격한 확대나 국가부채의 급증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이달 초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의회의 2021년 예산 승인에 앞서 지금은 나랏빚이 급증할 수밖에 없지만 2023년부터 빚을 갚기 위해 온 국민이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한다며 진심을 다해 국민의 양해를 구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말 예산국회 시정연설에서 국가부채나 재정건전성 현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라경제가 점차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려야 하는 진퇴양난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책임은 다음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리라.
가장 첨예한 긴장감은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LG유플러스의 중국 화웨이 제품 사용에 대한 미국 측 견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관계자들은 개별 기업의 선택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나 첨단기술 분야일수록 군사용과 산업용이 중첩되는 데다 미·중 패권 경쟁의 승부가 기술로 갈리는 상황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줄타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과거 행적을 보면 한국이 보다 분명하게 미국 편에 서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막무가내 경제 보복도 최근 호주 사례에서 보듯 사드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미·중 관계에서 한국이 갈수록 까다로운 양자택일의 선택에 몰릴 수 있는 이유다.
또한 바이든 당선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도 최근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방침을 연달아 밝혔다. 문제는 이런 선언이 경제와 산업, 에너지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80%가 에너지 부문과 관련돼 있고 이를 대폭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부문의 대전환을 각오해야 한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아니면 원자력발전뿐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원전 비중은 줄이며 신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를 대체한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일 뿐이라고 한다. 탈원전과 탄소중립은 향후 30년간 한국경제를 괴롭힐 진퇴양난의 질문인 셈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진퇴양난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인내와 지혜를 필요로 한다. 섣부른 과감함이나 선명한 선택이 오히려 일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 환경은 3중 4중의 진퇴양난 국면이다. 사태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은 분열적 정치 리더십이다. 진퇴양난의 국면마다 사생결단의 정치가 비집고 들어와 사회를 갈라놓는다면 어떤 경제가 버텨낼 수 있을까. 결국 정치가 문제이고 정치 리더십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