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책 ‘호모 데우스’에서 재미있는 예화를 든다. 그것은 ‘파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조그만 파리 한 마리가 거대한 도자기 가게를 부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파리가 거대한 황소를 찾아내고 귓속에 들어가 윙윙거리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황소는 공포와 화를 참지 못해 정신없이 날뛰다 도자기 가게를 모조리 부수고 말 것이다.
‘호모 데우스’라는 두꺼운 책 전체의 이야기 중에서 이 짧은 예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멀쩡하던 도자기 가게가 한순간에 부서진다면, 도자기 가게 주인은 얼마나 황당할까. 가게 주인은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까.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을까.
성난 황소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황소의 귓속에 있는 작은 파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파리를 잡는다 한들, 어떤 파리가 언제 어떻게 황소의 귓속에 또 들어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의 도자기 가게는 언제나 위태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다. 파리의 윙윙거림에도 충격을 덜 받을 황소를 키워내는 수밖에.
2020년 한 해는 코로나19와 싸우느라 보낸 시간이었다. 우리는 느닷없는 황소의 공격으로 부서진 도자기 가게의 주인과 다를 바 없게 됐다. 황소는 여전히 날뛰고 공들여 만든 도자기들이 깨어져 가게가 난장판이 됐다.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무능력하게, 우리의 모든 가게가 부서지다니.
코로나 19는 파리인가, 황소인가.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는 날뛰는 황소가 아니라, 황소의 귓속을 윙윙거리는 파리인 듯하다. 작은 파리에 불과한 것이 거대 황소의 귓속을 휘저은 결과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더 좋은 도자기 가게를 만들기 위해, 그것을 지켜줄 크고 든든한 황소를 키웠다. 그 황소의 힘으로 세계는 하나가 됐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교역을 하고 문화를 나누고 서로의 힘을 키웠다. 정교한 기술의 발전이 황소의 힘을 키워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서로를 훨씬 더 강하게 통제하며 서로 힘자랑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황소의 힘으로 우리의 가게는 번성했다. 그러나 어느 날, 코로나 19라는 파리가 이 황소의 귓속에 들어갔고 놀란 황소는 날뛰었다. 하나로 잘 묶였다는 게 함정이었던 것 같다. ‘전 세계적 연결’이 ‘전 세계적 붕괴’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이것이 코로나 19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처가 ‘봉쇄’인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하나로 묶였다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하나가 된 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키운 황소가 언제나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도 깨달아야 할 때다. 우리가 만든 것들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이제 도자기 가게 주인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당장 도자기 가게를 다시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파리가 들어간 황소의 정체를 파악하고 다가올 수많은 파리의 조롱에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황소를 키우는 게 아닐까.
새롭게 글을 시작하는 필자의 관심은 바로 이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황소를 찾는 것.
김호경 교수 (서울장로회신학교)
약력=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신학박사(T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