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포스트코로나 한국교회 길을 묻다

입력 2020-12-17 03:03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추구하는 일, 소속 교단의 아름다운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되 다른 교파의 입장 역시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에큐메니컬의 기본이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을 이끄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이경호(61) 신임 회장과 이홍정(64) 총무가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코로나19 방역에서 일부 교회가 보여준 배타적 모습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회가 세상과 유리된 게토가 돼선 안 되며, 자기 비움을 통한 사랑의 소통으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선교적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방향성을 제시하는 여섯 번째 기획 대담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NCCK 총무실에서 열렸다.

NCCK 이경호 회장(왼쪽)과 이홍정 총무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십자가와 성경책을 사이에 두고 대담을 나누고 있다.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강민석 선임기자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이경호 회장=2020년은 가장 힘들었던 해일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불황을 겪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 노인분들도 우울감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럴 때 떠올리는 성탄절 말씀이 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 탄생을 예고하면서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자, 마리아는 “예”라고 응답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탄을 맞이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홍정 총무=감염병으로 인류 공동체가 총체적 위기입니다. 벼랑 끝에 선 탐욕의 문명과 욕망의 질주, 인간중심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인식해야 합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선 멈추고 성찰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탐욕의 문명을 멈추고 나 자신과 교회를 성찰하고 생명·생태·관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탄절에 모이는 예배조차 어려워져 더 안타깝습니다.

이 회장=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사랑을 나눌 것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총무=NCCK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상시로 소통하면서 교회 방역대책을 협의해 왔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일부 혼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생활방역 수준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교회 역시 비대면 예배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이전 인식에서 탈피하고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는 왜 모일까요. 결국 흩어지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교회에서의 삶은 어때야 할까요. 이걸 새롭게 고민해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가 흩어지는 교회의 삶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교회의 목표라면 사회와 소통을 게을리하지 말고 균형이 잡힌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역단계 격상에 대한 일부의 이의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코로나19로 교회와 사회에서 더 많은 갈등이 노출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 회장=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와 방식이 있지만, 그걸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 남을 정죄하는 데 쓰는 건 잘못입니다. 마찬가지로 각 교단이 가진 신학적 분석, 교리적 입장, 역사, 예배방식 등이 있습니다. 그건 해당 교회에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한국교회 차원에서 모일 때는 그보다 더 큰 가치, 교회를 통해 더 아름답고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지를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자기를 비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복음과 진리라는 더 높은 뜻, 더 큰 틀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비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방식입니다. 자기중심주의를 관철하는 것은 참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 총무=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많은 이가 상호의존성을 자각하는 점은 다행입니다. 나의 안전을 위해선 남의 감염도 막아야 하고, 이게 인류가 한 가족이란 새 의식을 만듭니다. 인간 존재뿐만 아니고 생태적 생명망에 대한 자각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마치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배타적 욕망을 과도하게 세상을 향해 표출할 때 교회는 게토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고 세상과 소통이 어려운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라는 본래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반대하는 분들은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려는 생각이고, 지지하는 분들은 복음이 지니는 약자들에 대한 보호라는 가치를 세상에서 좀 더 구현하자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갈등하는 게 아닙니다. 상호보완적 인식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접점을 좁혀가는 대화가 계속 필요합니다.

-감염병의 상시화, 기후위기 같은 과제 속에서 교회의 사역은 어때야 할까요.

이 회장=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해결돼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습니다. 기후변화와 생태보전만 해도 미래학자들은 지금 움직여야 10~15년 뒤에 결과를 보게 된다고 조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이 당장 필요합니다. 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격차 세대갈등을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한 사람 영혼 구원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더 먼 미래를 보면서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더 크게 눈을 뜨고 더 멀리 보는 게 필요합니다.

이 총무=코로나19는 인간중심주의와 교회중심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요청입니다. 과거 대형집회나 화려한 행사를 통해 사람을 끌어모으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그건 경제성장과 인구확산 시대의 성장제일주의입니다. 이젠 벗어나야 합니다. 존재의 증언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충분히 자기를 비워낸 뒤엔, 제가 잘 쓰는 말인데, 소금처럼 빛처럼 바람처럼 꽃의 향기처럼 돼야 합니다. 존재를 과시하지 않고도 스스로 존재를 증언해내는 모습으로 한국교회가 중심을 옮겨가야 합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이중 삼중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환대하고 동행하는 모습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러면 세상이 알게 됩니다. 이게 살아있는 교회구나. 이게 복음이구나. 이런 작은 깨달음이 번져가면 좋겠습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신 겁니까.

이 회장=성공회 성도였지만 중고교는 감리교 미션스쿨을 다녔고 한신대 학부와 신대원에서 공부했습니다. 교회 일치를 위한 세계 성공회의 노력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당시 지도교수가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님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셨습니다. 학창시절엔 수원에서 기독교 청년운동을 하면서 다른 교파 분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곤 했습니다. 다른 교회에 대한 불편함 없이 좋은 추억들을 갖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총무=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락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첫 에큐메니컬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를 촉구하는 NCCK의 88선언이 나왔는데, 반공 의식이 강했던 장로님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임영수 목사님과 상담하며 부드럽게 설득해 특별한 갈등 없이 지냈습니다. 영국 버밍엄대에 유학하면서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경험하며 에큐메니컬 선교 신학을 연구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A)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독자들께 새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 회장=마태복음 1장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인 28장 20절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2021년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주님과 더 깊은 신뢰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이 총무=NCCK는 2021~2022년 주제를 “새 계명의 길을 걸으라”로 했습니다. 갈등하고 분열하는 이면에 사랑의 부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사랑, 자기 비움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사랑이라는 변혁적 제자의 길을 갈 때 코로나19 극복과 교회 갱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