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써도 큰 만족… 온라인 중고시장 몸집 커진다

입력 2020-12-19 04:05 수정 2020-12-19 04:05
직장인 한모(27)씨는 당근마켓에 안 읽는 책이나 입지 않는 옷들을 올리며 용돈을 벌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옷장 정리를 하게 됐다”며 “안 입는 옷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중고거래를 시작했는데 몇 만원씩 생기니 너무 재밌어서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한해는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2008년 4조원 규모였던 중고거래 시장이 올해는 약 20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닐슨코리안클릭은 2018년 200만명 수준이었던 모바일 중고거래 이용자가 지난 6월 1090만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당근마켓은 지난 9월 월간 활성이용자(MAU)가 10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중고거래 성장 배경으론 대표적으로 ‘저성장 장기화’가 꼽힌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에서 “중고는 저성장이 악화하는 가운데 나름의 수입 속에서 ‘적게 쓰지만 큰 만족을 얻으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성장이 폭발적이었던 건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안 쓰던 물건들을 정리해 처분하려는 수요가 늘었고, 중고거래 앱을 통한 안전결제 등의 보호 장치 생성과 비대면 거래가 쉬워진 게 한 데 맞물렸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고거래의 핵심은 신뢰인데 중고거래 앱 사업자들이 안전결제, AI 도입 등의 기술을 통해 신뢰 문제를 회복한 영향도 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달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55.0%가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중고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올해 키워드는 ‘마스크·아웃도어’

이처럼 중고거래는 이용자들에게 거부감이 낮아지고 국민 5명 중 1명이 중고거래 앱을 이용할 만큼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많이 거래되거나 검색된 품목들 순위에도 소비자들의 일상과 관심사가 투영됐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2, 3월엔 당근마켓 검색어 1위가 ‘마스크’였다(표 참조).

그 이후엔 답답함을 해소하면서도 비교적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자전거, 캠핑, 골프 등 관련 아웃도어 용품을 찾는 수요가 이어졌다. 당근마켓에선 자전거가 8개월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중고나라에선 캠핑용품 거래 규모가 지난해 360억원이었던 게 올해는 상반기에만 280억원을 돌파했다. 번개장터에서도 캠핑용품 거래 건수가 전년 대비 85%, 골프용품이 45% 증가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통칭)의 취향거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번개장터에서는 스마트폰, 스니커즈, 스타굿즈 같은 ‘덕질’ 물품들이 거래건수 상위 3위에 올랐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한정판 물건들을 사고파는 MZ세대의 모습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번개장터는 이용자의 80%가 MZ세대다.

각자 강점 내세워 포지셔닝한 BIG3

중고거래 앱 BIG3로 꼽히는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는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어 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이는 주 이용자의 연령대과 성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근마켓은 3040대 여성이, 중고나라는 3040대 남성이, 번개장터는 1020대의 비중이 높았다.

이 같은 특징은 각 앱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당근마켓은 ‘맘카페’가 최대 경쟁자라고 할 정도로 동네 이웃들과의 커뮤니티 기능을 앞세웠다. 애완동물 자랑부터 동네 맛집이나 붕어빵 가게 위치 등 정보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동네생활’ 서비스가 타 앱들과 차별화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렇다보니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한 3040대 여성들이 거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번개장터는 ‘취향기반 플랫폼’을 내세워 MZ세대 사이에서 스타굿즈나 한정판 물건들을 전국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래건수 상위 3개 품목에 스니커즈와 스타굿즈가 있을 만큼 번개장터에선 취향을 담은 물건들이 주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정체성을 반영하듯 번개장터는 지난 10월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을 인수하기도 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으로서는 가장 역사가 긴 중고나라는 네이버 카페까지 포함했을 때 가장 많은 수의 물건과 이용자를 기반으로 한 ‘시장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카페와 앱을 모두 포함했을 때 가입자가 2300만명이고, 하루에 올라오는 게시글만 39만건으로 1초에 4.5건 수준이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물건도, 거래도 가장 많아 시장성이 높다는 게 중고나라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사기거래·신뢰도 문제는 넘어야할 산

중고거래 플랫폼이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고나라에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오명을 씌운 사기거래 문제가 있다. 또 아이나 장애인을 판다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시글들이 그대로 노출되거나 거래가 금지된 품목들이 올라오는 등의 문제도 해결이 필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 업체 모두 사기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며 “신뢰도 개선을 가장 중대한 문제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한 투자를 모두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고거래 앱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안전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판매자의 사기거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리고 있다. 또 문제가 되는 게시글을 사전에 걸러내기 위해 AI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하고, 게시글 필터링을 전담하는 감시 인력도 늘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 교수는 “사기가 영원히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니 사기를 당했을 때 보험처리가 가능하다거나 문제가 되는 게시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자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