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소상공인 지원 방안으로 ‘임대료 감면’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임대료는 시장 원리에 따라 이뤄진 ‘임차인-임대인’ 사적 계약이다. 이를 국가가 개입하는 순간 ‘임대차 3법’처럼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경기 침체로 임대인 수익률도 1~3분기 내내 감소하고 있어 ‘조물주 위 건물주’가 아닌 영세 사업자는 희생 여력이 없는 상태다. 자칫하면 ‘을(乙)들의 전쟁’이 될 수 있다. 국민 갈등이 커지기 전 임대인 지원도 병행한 후 논의를 시작하는 게 맞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방역 조치로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 해법과 지혜를 모아 달라”며 논의에 불을 지폈다. 소상공인에게 일시적 현금 지원은 한계가 있으니 고정비용을 깎아주자는 의도로 보인다. 여당도 곧바로 공론화에 나섰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공정한 임대료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도 집합금지 업종은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고, 집합제한 업종은 기존 임대료의 절반 이상 요구할 수 없는 ‘임대료 멈춤법’을 발의한 상태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까지 ‘착한임대인운동’을 권장하면서 건물주 선의에 상황을 맡겼는데, 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대료의 상대방 계약자도 또 다른 국민이란 점에서 정부·여당의 움직임은 건물주가 갑(甲)이라 희생을 해도 된다는 시각에 근거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임대인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임대 이익 등 소득수익률은 중대형·소규모·집합 상가 모두 하락했다. 1분기와 3분기 소득수익률을 비교하면 중대형 상가는 -0.24% 포인트, 소규모 상가는 -0.17% 포인트, 집합 상가는 -0.18% 포인트를 나타냈다.
일부 자산가를 제외한 생활형 임대인은 임대료를 받아 은행 대출과 세금, 관리비 등을 해결해야 한다. 만약 임대료가 끊기면 이들도 파산에 직면하는 ‘을’이 된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19로 미국에서도 ‘임대료 파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임대 시장의 약 절반인 소규모 업자들이 줄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임대차 3법’과 비슷한 국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차인 보호는 맞지만 일방적인 정책은 양극화와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임대인도 임대료가 없으면 연체와 소득 감소 등에 직면한다”며 “임대인 지원책을 만든 후 스스로 임대료를 깎아주는 식으로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임대차 3법과 임대료 문제가 비슷한데, 정부가 한 측면만 바라보고 시장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임대료는 최저임금이 아니다. 국가가 소상공인에게 할 일은 큰 규모의 재정·융자를 지원하고, 뒷받침할 재원 원칙을 세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도 임대인 지원 필요성은 인식하는 분위기다. ‘임대료 멈춤법’에는 임대인의 담보대출 상환기간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등의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전슬기 기자, 박재현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