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문화의 상징인 브레이크댄스가 2024년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타악기나 기계음을 활용한 강한 액센트의 음악을 춤사위로 표현하는 브레이크댄스는 그동안 공연예술의 영역 안에 있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나면 올림픽 금메달을 경쟁하는 스포츠 경기로도 영역을 확장한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세계 ‘투톱’으로 평가되는 한국은 파리 올림픽의 유력한 메달권 주자로 꼽힌다. 한국이 사상 첫 올림픽 브레이크댄스에서 경기장의 힙합 비트를 시상대의 애국가로 바꿔 놓을까. 한국의 간판 브레이크댄스팀 진조크루의 김헌준(35) 대표와 세계 톱랭커 비보이 김헌우(33) 형제는 14일 경기도 부천 스튜디오에서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새로운 효자종목 탄생할까
파리올림픽 브레이크댄스에 걸린 금메달은 남·여 부문 1개씩이다. 성별로 16명씩 출전해 일대일로 대결하는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자를 결정한다. 주관 단체는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브레이크댄스 종목을 일임한 최상위 단체다.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은 WDSF에 가맹된 한국 단체로서 내년부터 선수를 등록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를 양성하게 된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에서 브레이킹 분과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미 ‘스킴’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유럽 브레이크댄스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를 휩쓸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지금은 행정력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비보이 랭킹에서 10위권 안팎을 오가는 강자다. 이런 김 대표에게 브레이크댄스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비보이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그동안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국제대회에서 입상할 때마다 ‘올림픽이었으면 국민 영웅이 됐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경험을 돌이켜볼 때 브레이킹의 올림픽 진입은 나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비보이에게 희망을 주는 사건”이라며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브레이크댄스를 태동한 곳은 1970년대 미국 클럽과 골목이다. 타악기 연주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춤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의 브레이크댄스로 개념을 세우고 동작을 구성한 최초의 인물은 미국 뉴욕주 브롱스의 클럽에서 활동했던 자메이카 출신 DJ 쿨헉(Kool herc)으로 지목돼 있다. 쿨헉은 음악에서 가사 없이 비트만 연주하는 구간을 연결해 춤을 추는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을 만들었고, 이때 사이퍼(무대)로 등장해 춤을 췄던 댄서가 ‘브레이크보이(break-boy)’로 불렸다. 현재 사용되는 비보이라는 이름은 ‘브레이크보이’에서 유래했다.
브레이크댄스의 정식 명칭은 브레이킹(breaking). 우리에게 익숙한 브레이크댄스라는 이름은 종주국 미국과 세계 힙합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표현이다. SNS에서는 힙합계의 유명인을 중심으로 ‘브레이크댄스가 아닌 브레이킹이라고 부르자(called breaking, not breakdance)’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브레이크댄스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반세기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면서 세계 곳곳의 문화로 정착했다. 대도시 클럽부터 난민촌의 골목까지 어디서든 브레이크댄스를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선 지금의 K팝 이전 세대인 1990년대 음악계를 주름잡은 기류 중 하나는 힙합이었고, 그 무대를 시각화로 완성한 몸짓이 브레이크댄스였다. 한국은 종주국의 지위를 가진 미국, 유럽 비보이 최강국이자 첫 올림픽 개최국인 프랑스와 메달 3파전을 벌일 가능성이 거론되는 강자다. 국가별 랭킹에서도 미국에 이어 2위다.
김 대표는 “브레이킹을 서브컬처로 보는 세상의 시선을 비보이들은 의식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에게 강요할 이유가 없고, 특정 문화에 몰입하는 것을 하나의 멋이라고 생각했다”며 “브레이킹이 제도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주류 문화로서 충분한 자격을 확인했다. 꼭 댄스팀의 일원이 아닌 기존 공연계와 가요계에서도 뜻만 모은다면 선수를 키울 수 있다. 문화로 주목을 받는 한국에서 힘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체계적 육성 저변은 여전히 부족
한국에서 브레이크댄스는 이제 뒷골목에서 추는 춤이 아니다. 해외 인사를 초청하는 외교부 행사에 비보이 공연이 펼쳐지고, 군에서 비보이 특기병으로 복무할 기회도 열려 있다. 문제는 이런 관심을 올림픽 국가대표 육성 체계로 전환할 저변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한국 브레이크댄스는 현재 김 대표와 김헌우처럼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비보이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그 이후 세대를 지탱할 유망주의 규모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크지 않다. 양궁처럼 금맥을 이어가는 효자종목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망주 발굴이 시급하다. 개최국에 재량을 주는 올림픽 종목 선정 방식을 감안하면, 브레이크댄스는 파리올림픽으로부터 4년 뒤인 20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까지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유망주가 도쿄올림픽 이후 다가오는 두 번의 올림픽을 책임질 메달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윙’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비보이 세계 랭킹 1위 김헌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김헌우는 4년 뒤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에 대해 “지금만 놓고 보면 크다”면서도 “하지만 올림픽은 3년6개월 뒤에 열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조치가 필요하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헌우는 파리올림픽이 열릴 때 만 37세가 된다. 자신이 직접 선수로 출전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잇는 재능있는 후배가 나오길 기대한다.
김 대표는 “최근 중국·일본의 성장이 가파르다. 특히 유망주 발굴에선 중국이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경우 비보이 선발 오디션에 도시 한 곳에서만 2~3일 걸릴 만큼 많은 인원을 모으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브레이킹에 대한 지원책이 부족하고 인구마저 감소해 유망주 발굴에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전국에서 초등학생 유망주를 5명도 찾기 어렵다”며 “이대로면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한국 브레이킹의 메달 전망을 낙관할 수 없다.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교육 현장에서 인재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 앞으로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 방과 후 활동으로 브레이킹을 포함시켰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부천=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