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등장한 애굽의 파라오는 정치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급속한 인구 증가가 정치적 위기의 주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 히브리 여인들이 남아를 출산하면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거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히브리 산파였던 십브라와 부아는 파라오의 명령을 거역하기로 했습니다.
눈을 딱 감고 타협하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 17절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린지라”고 설명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유사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몸 안에 있는 아기를 죽이느냐 몸 밖에 나온 아기를 죽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 기술의 차이일 뿐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부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빌미로 낙태를 전면 개방하려고 합니다. 뱃속 아기들을 임산부의 세포 덩어리로 둔갑시켜 그들의 생명이 보호받을 권리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던 시기에도 학살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낙태가 자행됐음에도 이젠 낙태를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위기에 있습니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복지 혜택을 약속하며 출산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출산 장려와 모순되게 더 많은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법을 개정하겠다 합니다.
통계적으로 연간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대략 30여만명인데 이에 반해 낙태를 당하는 아기들은 대략 110여만명 정도 됩니다. 수많은 생명이 음성적으로 낙태 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얼마나 더할까요. 통계만 본다면 인구가 줄어드는 원인은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야 할 아기들이 낙태로 몰살당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위험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파라오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파라오가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분노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산파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파라오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산파들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이 문제를 좁은 지면에서 논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이들의 행위를 하나님 경외함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판 아기 학살’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와 관련해 히브리 산파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야를 불문하고 행정부나 입법부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제2의 히브리 산파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제2의 산파들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20~21절) 이 약속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김민호 목사 (인천 회복의교회)
◇인천 회복의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교단에 소속된 교회로, 2003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이 땅에 종교개혁과 청교도 정신 구현을 소망으로 설립됐습니다. 교회는 이를 통해 복음으로 개혁된 한국교회, 대한민국 건설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