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60대 중반 A씨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본인 부부가 안거리(안채)에 살고 94세 노모는 밖거리(바깥채)에 산다. 노모는 지금도 세끼를 자신이 차려 드신다. 밖거리에는 노모가 쓰는 정지(부엌)가 따로 있다. 자식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 아들 부부는 간간이 곰국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드리고 고기를 사다 채운다. 어쨌든 삼시 세끼를 안거리 부부와 밖거리 노모가 따로 만들고 따로 먹는다. 제주의 부모와 혼인한 자식이 한집의 안거리, 밖거리에 살면서 식생활을 독립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같은 마을 50대 후반 B씨는 혼기가 찬 아들이 있다. B씨는 아들이 결혼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주고 근처에 새 집을 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집은 안거리, 밖거리 구조가 아니고 안방, 거실, 주방, 작은방, 또 작은방 등 신식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갈 밖거리가 없으니 나갈 집을 새로 짓겠다는 것이다. “원래 내 집이 아니라 부모가 물려준 것이기 때문에 나도 물려줘야지.” B씨가 집을 지어 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B씨가 결혼했을 때 집은 안거리, 밖거리 구조였다. 처음에는 밖거리에 살다 첫아이를 낳고 안거리로 들어갔다. 식구와 살림이 늘어 큰 집이 필요했고 부모는 오히려 살림이 단출해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밖거리로 나갔다. 부친이 돌아가신 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을 새로 짓고 노모는 별채의 밖거리를 지어 모시고 있다. 노모는 연로하시고 거동이 불편해 삼시 세끼를 챙겨 드린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주택 형식은 중앙에 마루, 양쪽에 안방과 작은방을 배치하는 일자형이다. 안방에 고팡(보관창고), 작은방에 부엌이 연결된다. 마당 사이로 마주보고 같은 구조로 한 채를 더 지으면 안거리와 밖거리, 즉 두거리집이 되고 ‘ㄷ’자로 모로 더 배치하면 모커리라 부른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가족들이 살고 모커리는 창고 또는 축사 등의 용도로 사용한다.
안거리는 부모 세대가 살고 밖거리는 자녀 세대가 살다 자녀가 혼인해 자식을 낳게 되는 때를 기점으로 부모가 밖거리로, 자식이 안거리로 들어간다. 밖거리 자식이 안거리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집안을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집에 살지만 각 세대는 별개의 부엌과 장독대를 갖고 독립된 취사에 식사를 따로 한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분할된 경제 단위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안거리, 밖거리 세대가 왜 따로 밥을 해먹는지 물었다. “밥 먹는 시간이 다르다”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된 답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각각 직업과 직장이 다르다. 시어머니는 당근밭에서 일하러 새벽에 나가야 하고 며느리는 물때 맞춰 바당(바다)에 가야 한다. 제주도 할머니 사후 통장에 몇 천만 원씩 남아있는 것은 보통이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육지 주부 개념으로는 제주도의 세대별 식사 연유를 도저히 풀 수 없다. 이들은 일찌감치 부모와 자식 세대가 독립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답을 찾은 건지도 모른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