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한사랑의원 진료실에서 지난 8일 만난 이곳 한낙천(57) 원장은 흰색 가운 위에 붓글씨로 ‘우리를 창조하신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진료할 때든 평상복을 입을 때든 한 원장은 늘 명찰을 빼놓지 않았다. 진료실 책장에는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진료실 안쪽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붓글씨와 후원 아이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고, 책상 위에 성경책과 서예 도구들이 놓인 작은 방이 있었다. 한 원장이 틈틈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공간이다.
한 원장은 월드비전에서 14개국 30명의 아이를 정기후원하고 2017년부터 매년 한 곳씩 식수 위생 사업을 지원하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누적 후원금도 1억원을 넘어섰다. 한 원장은 현지에 세우는 현판에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새기지 않았다. 그가 새긴 건 ‘예수’(JESUS)였다. 이슬람 국가여서 그대로 새길 수 없는 경우엔 한글 ‘예수’를 영어 발음으로 옮겨 적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시며 지혜와 능력을 주셨고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 주님의 이름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 현판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예수님을 알리고 누군가는 예수님이 하셨다고 생각하길 바랐어요.”
한 원장이 신앙을 갖게 된 건 6년 전의 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나는 누구인가’ 등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대에서 바쁘게 공부하느라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논어 맹자 등 고전을 읽고 서예를 배워도 답은 없었다. 그렇게 50대가 된 그가 잡은 건 성경이었다. 1년간 매일 명설교로 이름난 목사들의 설교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6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하나님을 만났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치유한 이야기를 읽는데 문득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지금까지 공부한 것과 들었던 설교, 갖고 있던 지식과 삶의 모든 궤적이 퍼즐이 맞춰지듯 예수님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경험을 했죠. 그날 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 무릎을 꿇었고 제가 지었던 모든 죄가 다 생각이 나 한참을 울며 기도했어요.”
신앙은 곧 나눔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7년 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10명의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한 그는 하나님을 만난 후 1년에 10명씩 후원 아이들을 늘려갔다. 매번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집과 병원 곳곳에 사진을 뒀다. 후원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모두 꼼꼼히 읽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30명이 되자 매달 편지에 답장하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그는 “후원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30명이 넘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며 “정기후원은 30명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월드비전 등 믿을 수 있는 구호단체를 통해 빈곤 지역을 돕거나 우물을 파주는 일 등에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해지는 후원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한 원장의 중요한 일과다. 7년 전 처음부터 후원해온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레메씨오 아일리네 루미호(16)는 비쩍 말랐던 얼굴이 제법 통통해졌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속 아이는 멀끔한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채 웃고 있었다. 한 원장은 “예수님을 믿고 나니, 내가 내 생명을 버려서라도 저 아이들이 좋은 물을 마시고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작지만 이 일이 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월드비전이 잘 해주고 있구나 싶어 흐뭇하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매달 수입의 절반 이상을 후원에 사용한다. 소유한 것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은 삭개오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보다 더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월드비전 외에 연말엔 연탄은행에 100여만원을 기부하고 요양원 개척교회 등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한 원장보다 먼저 신앙을 가진 그의 아내도 따로 후원에 참여하며 남편을 적극 지지한다.
한 원장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나눔은 당연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나님이 베풀어준 은혜를 깨달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살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원장에겐 구체적인 나눔 계획이 없었다. 앞으로의 삶도 지금처럼 하나님이 그때그때 주는 마음을 따라 전도하고 나누며 살아갈 예정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소임 중 우리가 직접 행해야 하는 게 전도와 구제잖아요. 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마음이 들 때 미루지 않고 나눔을 행하는 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 돈과 명예는 내려놓고 주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고 싶어요. 제가 후원을 꾸준히 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임실=글·사진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