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K리그 명문 수원 삼성은 강했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전역 최고의 팀들이 모이는 무대에서 그들은 무서운 상대를 연거푸 이겨냈다. 불과 얼마전 1부 리그 잔류조차 장담 못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마지막 경기 퇴장이 아니었다면 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이르진 못했지만, 온몸을 던져 싸운 수원 선수단에 축구팬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수원 박건하(사진)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일정을 마친 뒤 지난 11일 귀국해 자가격리 하며 한숨을 돌리고 있다. 박 감독은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올 시즌 힘들었을 수원 팬들이 ACL 경기에 위로를 받았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ACL 대회 재개 전 수원이 선전하리란 시선은 많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가 전멸했고 주장 염기훈이 지도자 연수로 빠졌다. 1부 잔류의 축이던 공격자원 한석희도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박 감독은 “출발 당시만 해도 뭔가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면서 “첫 경기(광저우 헝다전)에서 지면 가망이 없으니 어린 선수들을 데려가 경험을 쌓게 해줄 계획이었다”고 털어놨다.
반전은 극적이었다. ACL 2회 우승에 빛나는 광저우를 두 차례 무승부로 잡아낸 데 이어 비셀 고베에 2대0 완승하며 16강 토너먼트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6강전에서는 지난해 J리그 우승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눌렀다. 마지막 8강전에선 전반 한 명이 퇴장하고서도 승부차기까지 고베를 끌고 간 끝에 아쉽게 탈락했다.
수원의 역동적인 경기력과 모든 걸 다 내건 듯한 선수들의 열정은 대회 내내 돋보였다. 그는 “16강을 지나면서는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겠다고 여겼다. 솔직히 우승도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고베전(8강전)에서 퇴장이 없었다면 충분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에게 지도자로서는 이번이 첫 ACL이었다. 그는 “선수들도 저도 ACL을 치르며 발전했다”면서 “감독으로서 국제대회를 치렀다는 점도 중요할 뿐 아니라 단기전을 운영하는 방법 등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리그에서 제가 부임한 뒤 선수들이 함께 앞에서부터 수비하고 공격하면 시너지가 얼마나 크게 나는지 느꼈을 것”이라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함께하려는 모습이 잘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이번 ACL 선전이 올 시즌 부진 탓에 힘겨웠을 수원 팬들에게 위로가 됐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할 것이라 장담하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년 시즌에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다”면서도 “올해보다 낫고 발전한 모습 보여드리도록 선수들과 최선을 다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