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선거 방식을 둘러싼 농업계의 해묵은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선거 방식을 현행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미국 대선처럼 대의원 몇 명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조합장들이 한 표씩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 과거 직선제로 회장을 뽑았을 때 횡령·뇌물수수 등 회장 비리가 만연했던 전례가 있어서다. 조합원 수가 조합별로 천차만별인데 한 표씩 행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장 직선제 논란, 왜 불거졌나
직선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회장이 표를 쥔 대의원만 신경 쓴다는 지적이 배경이다. 직선제 도입으로 대의원과 대의원이 아닌 이들 간 마찰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지만 그동안은 현안에 밀려 논의가 흐지부지됐었다.
다만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난 1월 취임한 이성희 6대 회장이 1호 공약으로 직선제 개편을 내놓으면서 힘을 실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인 이원택 의원은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방식을 규정한 농협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취지만 보면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전국에 산재한 1118개 지역 조합의 장이 동등하게 한 표씩 행사해 회장을 뽑자는 내용이 주된 골자다. 전국에서 선출된 293명의 대의원이 투표하는 현행 간선제보다 민주적일 수 있다는 명분이 담겼다.
얼룩진 과거와 형평성, 직선제 걸림돌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명분에 반론을 제기한다. 직선제를 해 본 경험이 반론의 뿌리다. 회장 선거 직선제가 도입된 것은 1988년 12월부터다. 주무 부처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를 뜯어고쳤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비리 문제로 회장이 임기 중 구속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초대 회장인 한호선 전 회장은 농협 예산 3억6400만원을 횡령해 임기 만료 전 구속됐다. 원철희 2대 회장도 대출 비리에 연루돼 임기 만료 전 사임한 뒤 구속됐다. 정대근 3대 회장도 마찬가지다. 재판 결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부지를 현대차에 매각하며 3억원을 수령한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을 살았다. 회장이 임기 중 구속되지 않은 것은 간선제로 바뀐 최원병 4대 회장 때부터였다.
이유가 있다. 과반 득표로 회장이 선출되는 선거 구조가 중심에 서 있다. 14일 익명을 요구한 농업계 관계자는 “유권자가 293명이면 147명만 신경 쓰면 되는데 1118명이면 560명은 챙겨야 한다. 그만큼 회장 당선 이후 내 편을 챙기려 권한을 남용할 소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형평성도 논란거리다. 전국 최대 조합인 A조합의 경우 조합원 수가 1만7922명에 달한다. 반면 조합원 수가 171명에 불과한 곳도 존재한다. 규모가 다른데 한 표씩만 인정하는 게 맞느냐는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최소한 회장 권한 사용의 ‘투명성’이라도 확보해야 직선제 도입이 파국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농협중앙회에 정통한 관계자는 “조합 지원자금 운영 공개, 인사 절차 공개, 감사기구에서 이해관계자 배제 등 회장 권한을 감시할 수 있는 조치 없이는 과거로 회귀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