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영화관엔 단 두 명의 관객만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필자였다.
문맹이었던 한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예술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환희를 느꼈다. 이후 사랑을 잃고 상실감 속에 쓴 작품들이 성공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을 다른 세상에 눈뜨게 해준 사랑과 예술의 지독한 배신에 깊은 상처를 입은 영혼이 돼 있었다.
전반부의 들뜬 상승곡선과 후반부의 아린 하강곡선이 얽혀 불이 켜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홀로 객석에 앉아 여운을 정리해야 했다. 영화 ‘마틴 에덴’ 이야기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이 영화를 파일로 내려받아 봤거나 집에서 주문형비디오(VOD)로 관람했다면 어땠을까. 좋은 작품이기에 나름의 감흥은 있었겠지만, 불 꺼진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영화적 체험은 절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거나 리모컨으로 다른 채널을 돌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닌, 잠깐이나마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않고 자발적 감금 상태로 두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절제의 보상이었다.
인류역사상 시간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의 시간을 낚아채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가시적 반응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마음속에 머무를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바로 다른 재미와 정보로 갈아타게 만든다.
성공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눈물 흘린 날들을 자축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도운 이들에게 감사하며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둘러보는 배려의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 역시 결과만으로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 넣지 않고 냉철한 성찰과 배움, 노력했던 자신에 대한 위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시간을 가로채는 세력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건네는 최신의 것들을 그냥 누리고 즐기라 한다. 서둘러 자랑하고 기분을 전환하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뺏겨버린 우리는 감정과 생각의 샘이 고갈된다. 모두가 연결됐다는 세상 속에서 점점 고립돼 간다.
코로나19가 우리를 힘들게 만든 건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다. 빼앗긴 시간이 다시 우리 앞에 찾아왔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당혹감도 한몫한다. 시간이 우리 앞에 있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돌려보내느라 바쁘다. 스마트폰 세상, TV 속 드라마 시리즈물, 온라인 게임으로….
우리 영혼은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의 행간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시간이 필요하고 흩어진 마음의 조각을 모아 올려드리는 기도의 시간,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는 정리의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가 그간 우울해지고 불안했던 건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시간 속에 담긴 영원의 빛을 외면한 채 시간을 허비한 탓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는 말씀에 이어 방탕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충만함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