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로 종결시키며 국정원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로써 민주당은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권력기관 개혁 3법(공수처법·경찰청법·국정원법)을 연내에 처리하며 ‘입법 독주’를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합법적 의사 진행 마저 (민주당이) 힘으로 막고 있다”며 즉각 반발했다.
국회는 13일 저녁 본회의에서 재적 187인 중 찬성 187표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3년 유예)하고 국정원의 직무범위에서 ‘국내 정보’를 삭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 불참했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정원법 표결에도 불참했다.
앞서 국민의힘이 신청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여권이 의결 정족수인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을 가까스로 확보하며 종결됐다.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안은 재석 의원 186명 가운데 찬성 180명, 반대 3명, 무효 3명으로 가결됐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표결에 의해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필리버스터 종결 표결이 무기명 투표로 이뤄지는 만큼 민주당은 본회의에 앞서 온라인 의원총회를 열고 표 단속에 안감힘을 썼다.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는 “180석이 쉽지 않은 숫자”라며 “181석 정도 맞춘 상태인데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달라. 실수 없이 무기명 투표에 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당 의석수 173석(구속된 정정순 의원 제외)에 친여 성향의 무소속 양정숙 김홍걸 이상직 이용호 의원, 열린민주당 의원 3명 등이 찬성표를 던져 의결 정족수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당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존중한다고 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입장을 바꿔 종결 표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정의당(6석)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 표결에 불참했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 또는 소수의견을 표현할 권리는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로써 민주당은 소수정당을 배제한 채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표결을 강행했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됐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마지막 토론자인 윤두현 의원의 발언이 끝나고 종결 표결이 시작되자 일부 검표위원만 제외하고 전원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종결 표결 직후 “여당이 의석의 힘으로 야당의 입까지 틀어막는 그런 아주 난폭한 일을 했다”며 “여러가지 불리한 상황들이 나오니까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다시 야당의 입까지 틀어막은 상황”이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밤 국정원법이 통과된 이후 민주당이 상정한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다시 이어갔다.
첫 주자로 나선 태영호 의원은 “법률 내 ‘전단 등’ 표현은 금전 또는 그밖의 재산상 이익도 포함된다. 따라서 초코파이조차 북한에 보낼 수 없게 된다”며 “이 법은 대북전단금지법이 아니라 김정은과 손잡고 북한 주민을 영원히 노예의 처지에서 헤매게 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은 태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이 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을 다시 국회 의사과에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은 14일 밤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 표결 이후 곧바로 이 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박재현 김동우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