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를 누빈 감독에서 ‘미투’ 폭로로 얼룩진 김기덕 감독의 죽음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김 감독 애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가운데 영화계 역시 공식 추모 없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앞서 라트비아 현지 언론 등은 김 감독이 60세를 일기로 유르말라의 한 병원에서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숨을 거둔 김 감독이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을 사 영주권을 획득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미투’ 폭로로 2018년 출국한 김 감독은 국내 영화 관계자들과 연락을 끊고 우호적인 해외 영화인과 교류하며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주로 주목받았던 김 감독은 200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사마리아’)과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빈집’), 2011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아리랑’)을 받았다. 또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쥐면서 3대 영화제 단골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를 해외에 알린 김 감독의 죽음을 바라보는 영화계 반응은 싸늘하다. 굵직한 성과들과 마찬가지로 김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생충’ 영어 자막을 번역한 달시 파켓은 SNS에 “2018년 그의 성폭력 의혹을 다룬 프로그램 방영 후 수업에서 그를 가르치지 않는다”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누군가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적었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도 “사과는커녕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피해자를 이중으로 괴롭힌 가해자 죽음을 애도할 여유는 없다.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이 윤리”라고 지적했다. 영화계 주요 단체도 현재까지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의 작품은 늘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논란을 빚었다. 극단적인 작품세계에 가려진 촬영 현장이 폭력적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저예산 영화 등 작품 수십 편에서 김 감독은 깡패, 사형수, 부랑아, 성매매 여성 등 인물을 중심으로 치닫는 폭력성과 변태성을 그렸다. 그나마 대중적으로 흥행한 ‘나쁜 남자’(2002)도 깡패가 여대생을 사창가로 끌어들인다는 얼개다.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뫼비우스’(2013)는 근친상간의 굴레를 그리기 위해 부자간 성기 절단 등 자극적 소재가 활용됐다.
2017년 배우 A씨의 폭로는 떠도는 소문에 힘을 실었다. ‘뫼비우스’ 촬영 당시 연기 지도라는 명목으로 뺨을 맞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며 A씨가 김 감독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배우들과 제작진의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김 감독은 A씨와 이를 보도한 MBC를 상대로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패소했다. 김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영화가 폭력적이라도 내 삶은 그렇지 않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2017)을 끝으로 한국을 떠나 해외를 떠돌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입국이 어려워진 탓에 유족은 김 감독의 장례를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 이후 유골은 국내로 운구될 예정이다.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본지는 2017년 8월 3일 <‘폭행·베드신 논란’ 김기덕 감독 “사실성 높이려다 생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24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