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건강검진을 받은 최모(43)씨는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 암 부위만 제거하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막상 유방 일부를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의료진은 암 부분절제 수술과 동시에 인체 피부 조직으로 유방 모양을 재건하면 수술 전과 가슴에 거의 변화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처럼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 가장 먼저 수술을 고려한다. 수술은 유방 전체를 들어내는 ‘전절제술’과 일부를 보존하는 ‘부분 절제술’로 나뉜다.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유방 전절제를 많이 시행했으나 방사선 치료술 등이 발전하면서 근래 유방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유방 최대한 살리는 치료 추세
14일 한국유방암학회 백서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유방암 수술의 67.4%가 유방 부분 절제술로 진행됐다. 의료기관에 따라서는 최대 90%까지 유방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유방 전체에 암이 퍼져 있거나 수술 후 방사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수술 전 선행 항암요법의 성과가 미미할 땐 유방 전절제술을 받아야 한다. 또 환자 자신이 전부 절제를 원하거나 유전성 유방암으로 판명돼 예방 목적의 수술이 필요할 경우, 수술 후 인공보형물 삽입을 통해 재건을 원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유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절제하면 유방 모양의 변형이 불가피하다. ‘가슴은 여성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만큼 유방 절제 후 환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단순히 미용적 측면이 아니라 신체 불균형, 상실감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 때문에 유방 재건은 미용 성형이 아니라 유방암의 중요한 치료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유방 전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2015년부터 유방 재건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의 50%를 지원받고 있다. 다만 부분 절제 수술 시에는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유방 재건술은 일반적으로 인공보형물이나 자기 조직을 이용해 이뤄진다. 인공보형물은 성형외과에서 유방 확대를 위해 쓰이는 실리콘 재질의 제품을 말한다. 유방 양쪽을 모두 크게 만들고자 할 때 적합하다. 다만 피부가 얇은 사람은 보형물을 넣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 유방 방사선 치료를 받았거나 추후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삽입 후 장시간이 지나면 보형물 주머니가 유방 안에서 터지거나 찢어질 여지도 있다.
서영진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장은 “수술 후 보형물로 인해 염증이 생기거나 피부에 구멍이 뚫려 다시 수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최근 이슈화된 유방 보형물 관련 ‘악성 림프종(희귀 혈액암의 일종)’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자기 조직은 주로 복부 지방이나 등 근육을 일부 채취해 암을 떼낸 유방 자리에 채워넣게 되는데, 이들 조직을 이용하려면 피부에 20~30㎝ 길고 보기 싫은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다. 또 수술 전 본인의 유방 모양이나 크기와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양쪽 대칭성을 잃을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유방 재건 방법 가운데 하나가 사람 피부를 방사선 처리해 만든 ‘무세포 진피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다. 진피는 표피의 바로 아래층으로 피부의 90%를 차지한다. 기증되거나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사람의 진피를 정부의 허가 사항대로 무균처리하고 항원성(이물질로 인식해 거부 반응)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쳐 만든 제품을 활용한다.
진피 조직을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재단해 만들었기 때문에 유방암을 떼낸 공간에 집어넣어 주면 환자의 유방 모양에 맞춰 조각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 방식은 서영진 가톨릭의대 교수가 최초로 개발해 2017년부터 정식으로 유방 재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다수의 의료기관들도 도입했다. 서 교수는 “암은 완전히 도려내되, 수술 전 본인의 유방 모양을 최대한 유지해 환자들 삶의 질과 정서적 안정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이런 방식의 유방 재건술을 받은 유방암 환자 120명의 만족도 평가와 합병증 발생에 대한 연구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외과종양학저널)에 발표했다. 연구결과 인체 조직을 활용하다보니 부작용이 적고 기존 유방 재건술에 비해 가슴의 좌우대칭을 쉽게 맞출 수 있었다. 환자 만족도도 90% 이상으로 높았다. 인공보형물과 달리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아도 된다.
단 아무리 항원성 최소화 조치를 하더라도 개개인의 면역 반응 정도는 다르기 때문에 매우 소수의 환자에게서 해당 피부 조직을 거부하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100명 가운데 3명 꼴로 생길 수 있으나 이 경우 삽입된 진피 조직들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수술비와 달리 진피 조직 재료비는 건보 적용이 안돼 약 1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자주 만져보며 이상 확인해야
유방암 환자는 2000년 6397명에서 2017년 2만6430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한 해도 쉬지 않고 환자 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서양의 경우 50세부터 나이가 많아질수록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데 반해, 한국은 4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최근에는 40~60대에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40세 이하 젊은 환자도 약 10.5%를 차지한다.
유방암은 다른 암과 달리 스스로 만져보면서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조기 발견이 어렵지 않은 편이다. 유방에 없던 혹(몽우리)이 만져지거나 유방 피부·젖꼭지가 아래로 끌려들어가거나 하면 의심할 수 있다. 암이 지름 1㎝를 넘으면 모든 부위에서 만져지기 시작한다. 젖꼭지에서 피가 비치거나 깎아 놓은 지 오래된 사과처럼 짙은 갈색의 분비물이 나와도 마찬가지. 유방 주위 피부가 마치 귤껍질처럼 변했거나 얇았던 피부가 두껍게 만져지고 모공들이 모두 보일 정도로 털이 곤두서 있을 때, 좌우 대칭성이던 유방이 덩어리가 커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변할 때도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드물게 유방 안에 생긴 암이 겨드랑이로 빠르게 옮겨가 조그마한 혹으로 만져지기도 한다.
서 교수는 “문제는 자가 검진에 관심을 기울이는 여성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라면서 “자신의 유방을 자주 만져봄으로써 가슴에 생긴 변화에 민감해져야 보다 빨리 암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가 검진은 생리 끝나고 3~5일 지난 시점에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