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급’ 해외작가 제니홀저·팀아이텔 화랑 전시 ‘눈길’

입력 2020-12-13 20:14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가 서울의 갤러리에서 잇달아 열리고 있다. 사진은 국제갤러리 제니 홀저 개인전 전시 전경. 갤러리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가 수도권에서 2.5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서울 소재 국공립미술관이 잠시 운영을 중단했다. 때마침 국공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이른바 ‘미술관급’ 해외 작가들의 개인전이 화랑가에서 열리고 있어 전시 갈증을 느끼는 미술애호가들을 손짓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는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70)의 개인전을 한다. 홀저는 지난 40여년 간 언어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개념 미술가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에 최초의 여성작가로 나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리석 벤치가 관객을 맞는다. 무턱대고 앉았다간 지청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 대리석 벤치들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리석 벤치마다 특유의 문장들이 있다. 이런 글귀도 적혀 있다. “Solitude is enriching(고독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대리석 벤치 작품과 대비시키듯 LED 조명 글씨 작품도 설치됐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LED 막대에는 글씨가 흐른다. 시시각각 바뀌는 LED 문장들과 침묵하듯 고정된 대리석 벤치의 문장들. 어떤 재질 위에 얹는가에 따라 문장의 뉘앙스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전시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홀저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하며 작품 세계를 미리 선보인 바 있다.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서는 지난해엔 볼 수 없었던 ‘검열 회화’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이 연작은 린넨에 유화를 입히는 방식을 통해 미국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회화로 번안해 낸다. 작가는 이미 상당수 내용이 검열된 상태로, 즉 중요한 문장들이 검정색 검열 막대기로 가려진 채 공개되는 ‘무늬만 공개’의 현실을 작품으로 비판한다.

작가는 검정색 검열 막대기를 회화로 번안할 때 검은색이 아니라 거꾸로 아주 화려한 금박 혹은 은박으로 호환시킨다. 그리하여 화려한 느낌의 추상화로 변신한다는데, 검열 회화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번 전시에선 처음으로 수채화 연작 36점을 벽화처럼 선보였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에 대한 미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를 담은 ‘뮬러(Mueller) 보고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 군이다.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홀저가 이 보고서를 읽으며 느꼈을 분노와 울분 등의 감정이 회화로 표출돼 작가의 당시 기분을 기분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년 1월 31일까지.

페이스갤러리에서 나온 팀 아이텔 작품 '인테리어(그림자)'. 갤러리 제공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갤러리에서는 독일 현대미술작가 팀 아이텔(Tim Eitel·49)의 개인전을 하고 있다. 아이텔은 사회주의 국가 구동독의 리얼리즘 회화 전통을 이어가는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구상화가 그룹인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주역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인 근원적인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서를 초상화에 담아낸다. 지난 여름 대구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바 있다.

국내에서는 책 표지 그림으로 사랑받으며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등에 표지 그림으로 실렸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무수하게 찍은 사진에서 포착한 것인데, 주로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뒷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림 속 주인공들의 등에서 쓸쓸한 감정이 저며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는 ‘분할과 연결’이라는 특유의 기법을 이어가는 신작을 선보인다.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화면 분할을 통해 한쪽은 완전히 단색으로 그림으로써 다층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예컨대 화면을 가르는 절반의 색면은 주인공의 마음 속 같기도 하다. 내년 1월 1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