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 마지막으로 ‘고별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첫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싱가포르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한이 조속히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우리 측 외교라인 인사들을 두루 만난 비건 부장관에게 정부는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에서도 북·미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부탁했다.
비건 부장관은 10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싱가포르 정상합의의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며 “북한이 서둘러 외교를 재개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월로 예상되는 북한의 8차 노동당 대회를 거론하며 “북한이 지금부터 그때(노동당 대회)까지 시간을 외교 재개를 위한 방향을 설정하는 데 사용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비건 부장관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놓고 북·미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실패로 끝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을 떠올리며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 협상팀이 정상회담 전 도착했을 때 (북측 실무협상팀은) 논의를 할 권한이 없었다”며 “지도자가 최종 합의를 타결하려면 그 전에 (북·미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생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각국 (실무협상) 대표가 권한을 위임받아 함께 (비핵화) 로드맵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상호 만족할 만한 방안으로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나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같은 크고 과감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 8일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원고를 직접 가다듬는 등 이날 강연에 상당한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비건 부장관은 이날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물론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까지 외교라인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가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우리 측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는 전날 발표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흘 연속 만찬을 여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11일 저녁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만찬을 주재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