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는 지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가까운 사람의 확진은 처음이다. 몸은 어떤지, 병원에는 갔는지 급하게 말을 쏟아냈지만 정작 휴대전화 너머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냥 집에서 해열제 먹고 낫기를 기다리는 것밖엔 할 게 없단다. 영국은 유럽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다. 영국 인구는 6788만명으로 우리나라(5178명)와 큰 차이가 없지만, 한때 하루 신규 확진자는 3만명을 넘었다. 이렇다 보니 병상이 부족하다. 호흡곤란에 빠질 정도의 중증이 아닌 한 집에서 버티다가 열흘이 지났는데 괜찮다 싶으면 활동하면 된단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갈 때 진단 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와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자신이 완치됐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학교에 가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감염이 꼬리를 문다.
얘기를 듣다 보니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확진되면 병원이나 시설에서 의료진의 관리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러다 환자가 급격히 늘면 정부가 더 이상 해줄 게 없으니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두 번째는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일이다. 이 암울한 상상이 요즘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수도권에서는 병상 부족으로 신규 확진자의 3분의 2 이상이 며칠씩 집에서 기다려야 하고, 경증에서 중증으로 심각해진 뒤 옮길 병상이 없어 대기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의료 시스템 붕괴다. 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을 늘리다 보면 뇌출혈, 교통사고 등 각종 응급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해진다. 의료 인력도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이 되기까지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중증 환자를 돌봐온 의료진은 탈진 일보 직전이다.
국민의 피로감도 쌓여간다. 지난 3월 2주일만 버텨보자고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10개월째다. 사실상 ‘코로나 통금’에 들어간 서울의 밤은 적막감이 흐른다. 사람들과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게 이렇게 소중한 일인 줄 미처 몰랐다. 약속이 줄줄이 취소되다 보니 만남이 그리워진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훨씬 힘들다. 생계 유지가 안 되니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K방역은 한동안 꽤 멋지고 믿음직스럽게 작동했다. 그런데 가을을 지나며 균열이 생겼다. 바이러스의 활동량이 왕성한 겨울이 오기 전에 방역 대책을 다잡아야 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다. 10월 들어 거리두기를 2단계에서 1단계로 낮춘 건 안일한 판단이었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기준을 무시하고, 단계를 내렸다. 10월 중순에는 각종 할인 쿠폰이 나와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11월 들어 거리두기를 기존 3단계에서 5단계로 세분화하면서 사실상 완화한 것이 가장 뼈아프다. 의료계는 단계를 빨리 올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뒤늦게 2단계, 2.5단계로 계속 격상했지만 이에 따른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정부에 남은 카드는 사실상 모든 것을 봉쇄하는 3단계뿐이다. 코로나 발생 후 가장 큰 고비다.
그동안 우리 대부분 아주 잘 버텨왔다. 국가가 끌고 국민이 주도한 K방역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최후의 수단까지 가지 않도록 국민 개개인이 코로나 경각심을 높이는 것뿐이다. 아직도 스키장에 인파가 몰리고, 오후 9시 이후 식당에서 먹을 수 없게 되니 호텔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에 확진되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한번 자가격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또다시 격리에 들어가게 될까봐 사람 만나는 게 두렵다고 한다. 자신과 정서적·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어지지 않도록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1차 유행의 중심이던 대구는 지금 안전한 도시가 됐다. 한때 병상이 부족해 중환자가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했지만 이후 경험을 교훈 삼았다.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고, 외출을 최대한 자제했다. 고위험 시설은 자발적으로 휴업했다. 시민의 참여가 최고의 방역임을 보여줬다. 이번 겨울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K방역의 성패가 달려 있다. 코로나 퇴치의 유일한 희망인 백신 접종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백신 없이 맞는 겨울이 두렵지만, 그래도 희망을 붙들어보고 싶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했던 K방역이 아닌가.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