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략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기업들 사이에 커지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이었다. 기존 상법은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게 돼 있다. 그 때문에 제대로 감사를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제기돼 법 개정에 속도가 붙었다.
애초에 사외이사에서 감사위원을 뽑을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의결권을 3%로 제한키로 했던 정부안은 국회 의결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각각 3%까지 인정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이른바 ‘3%룰’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완화된 안도 헤지펀드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달라질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는 의결권이 제한되는 반면, 투기 자본들은 의결권을 확대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21.21%인데 3%룰을 적용하면 의결권은 12.52%로 낮아진다. 최대주주인 고(故) 이건희 회장(4.18%)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삼성물산(5.01%), 삼성생명보험(8.51%) 등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인 보유 지분 56%는 그대로 의결권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분을 3%씩 쪼갠 헤지펀드 여러 곳이 합심해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가 기업의 ‘곳간’을 노리고 덤벼들면 5~10년을 내다보고 장기 투자를 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0일 “당장 돈이 안 되는 사업을 무슨 근거로 하냐고 투자 제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인수·합병이나 미래먹거리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도 배당으로 내놓으라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반대로 시민단체들도 3%룰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났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재계의 반대로 법안이 후퇴하면서 경영권 감시라는 개정안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내고 “3%룰 완화, 다중대표소송제 요건 강화 등이 급작스럽게 변경·후퇴해 확정되는 등 혼란을 초래했다”면서 “경제 개혁 입법 완성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공정경제 3법’을 두고 당초 입법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경제의 공정성과 민주성을 높이기 위한 (공정경제 3법의) 취지가 다소 무색해진 후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외이사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가 대주주·특수관계인 ‘합산’이 아닌 ‘개별’ 3%로 완화돼 대주주의 영향력 차단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정무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법안을 지나치게 빨리 통과시킨 측면이 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준엽 박재현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