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수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나온 질문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다. 올해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 초반 쏟아진 질문이다. 지금처럼 대권 주자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도 윤 총장은 뉴스 중심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은 엄정한 수사, 그다음에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수사 이런 면에서는 이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검찰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좀 더 분명히 인식하면서…”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 1년이 다 돼가지만, 청와대 출입 기자 그 누구도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에 관해 묻지 못했다. 질문 기회가 없더라도 문 대통령이 먼저 상세히 설명했더라면 이렇게 소통의 갈증이 심하진 않았을 것 같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1년 내내 국민을 지치게 하고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하지만 윤 총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그대로인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기자들조차 알 수 없다. 윤 총장 징계 청구, 검사들의 집단 반발, 윤 총장의 차기 대선 여론조사 1위…. 지난 1년간 벌어지는 일마다 ‘사상 초유’인데도 대통령의 침묵은 계속된다.
청와대에서 윤석열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금기어’가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기자회견 이후 공식 석상에서 윤 총장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추 장관이 윤 총장 징계를 청구한 지난달 24일에도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면서도 끝내 윤 총장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추·윤 갈등에서만큼은 대통령이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가까운 참모들과는 윤 총장을 언급하며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평가는 윤 총장 사태 이후 더 커졌다. 청와대도 할 말은 있다.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이 거의 매주 외부 일정이 있고, 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거의 매번 현장에서 간담회를 한다. 기자회견 횟수를 지적하지만, 횟수보다는 내용을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연설과 공식회의 모두발언, 외부 행사, SNS를 통해 끊임없이 발언하고 있다. 이번 주 들어서도 코로나19 백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탄소중립 등에 대해 생각을 알렸다. 다 중요한 현안들이고 대통령이 발언함으로써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정쟁’ 사안에 굳이 대통령까지 거들어서 사태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우려도 이해되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대통령이 하는 말과 국민이 듣고 싶은 말 사이의 ‘불균형’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국민이 듣고 싶은 것에 대해, 듣고 싶을 때 말하지 않으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특정한 금기나 성역이 있는 일방향 소통은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소통 노력은 ‘윤석열’이라는 금기어에 막혀 허사가 됐다.
다음 달이면 아마 또 신년 기자회견이 열릴 것이다. 대통령은 자유롭게 질문을 받겠다고 할 것이고, 그때도 질문의 핵심엔 윤 총장이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추·윤 갈등으로 그 모든 혼란을 겪은 뒤, 1년 만에야 문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윤 총장이 포함됐던 박영수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고 했다. 지체된 소통은 소통일까.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