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110여개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여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단독 처리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노동조합법 등이 줄지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174석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라는 비판에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심사를 지연시킨 것”이라며 법안 처리는 지난 총선 때 보여준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거대 여당의 법안 처리 결과를 두고 당내에서조차 “이게 개혁이냐”는 반발이 나오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 선출토록 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과 과징금을 확대하고, 금융그룹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도 가결됐다.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던 ‘3%룰’은 감사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개별 3%씩 인정하도록 해 원안(합산 3%)보다 완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결국 재계의 요구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하지만 본회의 표결에선 민주당 의원 중 다수가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찬성 142명, 반대 71명, 기권 44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우상호 정필모 의원은 반대, 신동근 노웅래 최고위원과 박용진 이탄희 양이원영 의원 등 최소 16명은 기권했다.
당 안팎에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개혁 입법의 원래 취지가 훼손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본회의 직전 열린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정부안보다 후퇴한 법을 통과시키는 게 어떻게 개혁 입법이냐” “이럴 거면 우리가 왜 부담을 안고 단독 처리까지 해야 하느냐”는 의원들의 성토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대표와 원내 지도부는 “당정청의 소통 결과를 존중해 달라”며 진화에 나섰다고 한다.
이날 새벽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관련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해고자·실업자를 비롯해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 택배노동자 등 14개 특수근로종사자(특고)에게 고용·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의 ‘특고 3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징수법 개정안)도 가결됐다.
사회적 참사 진실규명법 개정안(사참법)과 5·18 역사왜곡·진상규명 특별법(5·18 특별법)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기존 경찰 조직을 국가경찰과 자치 경찰로 분리하고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의 1호 당론 법안인 ‘일하는 국회법’과 곧 출소를 앞둔 조두순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도 가결됐다.
그러나 이 대표가 미래입법과제 15개 법안 중 하나로 선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은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정의당이 강력히 요구해온 중대재해법은 노동자의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일 공청회가 열렸지만 아직 법사위 법안소위 안건에도 상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처리를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해를 넘기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진행돼온 낙태죄 논의도 매듭을 짓지 못하면서 입법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