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땐 금보다 비쌌던 색 ‘파랑’에 관한 이야기

입력 2020-12-10 19:29

파란색이 금보다 비싼 시절이 있었다. 1508년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청색 안료 울트라마린 30g을 사기 위해 약 12두카텐(황금 41g)을 지불해야 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안료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책 ‘블루의 과학’은 파란색을 둘러싼 역사, 물리학, 생물학, 언어학 등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는 책이다. 가시광선을 여러 색깔로 나누는 분광기처럼 파란색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학문의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등에 기고하는 저자가 세계 각지의 연구실을 찾아 과학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 등도 포함했다.

중세에 금보다 비쌌던 울트라마린은 안료의 원료가 되는 광석의 채굴지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어서 뱃길을 통해 수입해야 했다. ‘바다를 건너’라는 의미를 담은 울트라마린은 이름 자체로 구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다. 귀한 재료인 만큼 특별한 곳에 쓰이는 건 당연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울트라마른 색을 쓰도록 했다.

울트라마린에 이어 널리 쓰인 파란색은 ‘프러시안블루’였다. 연금술의 영향으로 우연히 발견된 이 색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피카소의 ‘청색 시대’ 작품들에 사용됐다.

안타깝게도 프러시안블루는 인체에 치명적인 청산으로 분리되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극의 원료가 된다. 나치는 청산을 이용해 치클론B를 만들어 유대인 학살 등에 사용했다. 아이러니한 건 학살을 주도했던 하인리히 힘러 등도 청산캡슐을 삼키고 목숨을 끊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방사성물질 염화세슘을 섭취하거나 흡입한 사람에게 프러시안블루는 치료제가 된다. 실제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프러시안블루 제고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언어권에 따라 색에 대한 구분이 다르고, 이는 다시 색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역시 흥미롭다. 예를 들면 타히티나 마야왕국 언어에선 파랑과 초록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자연에서 파란색을 가진 대상이 드물어 해당 색을 지칭하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색상집에서 붉은색은 장미나 살구꽃 등 자연에서 따온 표현이 많지만 파란색은 화학이나 예술분야에서 빌려온 명칭이 대부분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