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됐을 때 드리는 제사로 마지막에 드린다.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셔라밈’인데 ‘완전하다’ ‘평화가 완전히 복원됐다’는 뜻이 있다. 영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됐음을 뜻한다.(엡 2:13~16)
구체적으로 무엇이 회복됐다는 말일까. 첫째, 빈부귀천의 차별이 사라진다. 화목제에서 말하는 진정한 회복은 빈부귀천의 차별이 사라지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차별이란 세상 권세자나 부자, 학식이 많은 자가 힘으로 약자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차별행위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래서 법으로 규정까지 해 놓으셨다. 야고보서 2장 9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고 말씀한다. 차별 행위자를 하나님이 범법자로 여기신다는 말이다.
차별행위가 가장 성행하는 곳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다. 북한을 보라. 김정은이 인민의 총비서라는 거창한 칭호를 가졌음에도 모든 인민은 그와 특권층을 위해 고된 노역과 정신적·육체적 희생을 강요당한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에 행하는 비인격적인 대우, 이런 차별이야말로 죄악 중의 죄악이다.
자본주의라고 해서 차별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국가는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차별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유한한 인간사회라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의 욕망보다 더 강한 인간의 본성,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탐욕을 버릴 수 있다.(갈 5:24)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국가도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그 사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성경 말씀이 정신적 기준이 돼야 한다.(갈 6:2) 따라서 진정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교회가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성경에서 말하는 화목제는 인종 차별, 성적 차별을 없애는 것이었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종, 성적 차별 금지법, 각종 인권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출애굽기 21~23장에 볼 수 있듯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먼저 주신 법이 인권법이다. 이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라는 본래의 의도를 비틀어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죄악을 옹호·조장한다. 하나님이 금하신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동성 간 성행위 비판을 차단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차별금지라는 그럴듯한 용어전략 속에 들어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진정한 화목제의 모습이 나온다. 복음 안에서 인종차별, 남녀 차별이 사라지는 화목제의 원형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역에 가서 점치는 여종을 만나 귀신을 쫓아냈다. 이 사건으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다. 그날 밤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양을 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다.
이 사건으로 간수장이 예수를 믿었고 바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하고 그 집안 모든 식구가 세례를 받고 구원받아 기쁨의 잔치를 연다. 그곳엔 죄인과 간수가 있었고 유대인과 로마인, 이방인이 있었다. 복음 안에서 신분의 귀천이 사라지고 인종차별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기쁨으로 하나가 됐다. 이것이 화목제의 참 의미다.(갈 3:28)
셋째, 화목제는 축제다. 화목제를 왜 축제라고 하는가. 축제처럼 기쁨으로 모든 것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화목제는 영적 앉은뱅이가 회복되고 맹인이 눈을 떴을 때 기뻐서 춤추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맹인의 눈을 고치고 앉은뱅이의 병을 고치셨으며 한센병을 고치셨다. 그들은 그것을 구원으로 받아들였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이를 볼 때 화목제의 진정한 의미는 영·혼·육의 온전한 회복이다. 교회는 주님이 행하셨던 병 고침과 귀신 쫓아내기, 가난 물리치기를 계속해야 한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아들을 찾은 아버지, 아버지를 만난 아들의 기쁨이 바로 화목제의 개념이다. 화목제에는 이처럼 충만한 기쁨이 있다. 이는 신분의 회복, 가난의 회복, 관계의 회복을 통한 온전한 축제를 뜻한다.
오늘날 화목제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본질적으로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예수 보혈이다. 인간이 하나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자들만 가능하다.(엡 2:16) 둘째, 성령으로 하나 될 수 있다. 성경은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한다.(엡 2:18)
교회는 화목제의 결정체다. 차별은 교회에서부터 사라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세상의 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신구약을 관통하는 화목제의 의미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