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지난 8일부터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면서 사실상 ‘통금’에 들어갔다. 무려 3주간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성탄절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성탄절은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누구에게나 설레는 날이 아닌가. 초유의 비대면 성탄절을 맞아야 할 우리는 이 낯선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물론 성탄절이 올스톱 된다 하더라도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의 탄생 사건은 취소되지 않는다. 예수는 여전히 성탄의 주인공이며 인류의 기쁨이다.
올해는 대면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돼서일까. 과거 성탄절의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청소년 시절 성탄절 즈음엔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부터 모인 우리는 한밤중 진행될 새벽송에 앞서 자체 모임을 가졌다. 말이 모임이지 친교와 오락시간이었다. 선물 교환과 온갖 종류의 게임은 재미와 즐거움 그 자체였다. 게임은 순발력과 재치, 현란한 몸동작까지 요구했다.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술래가 되거나 벌칙을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고 그저 기뻤다.
이렇게 실컷 놀고 나면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됐다. 교회 식당엔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해주신 떡국과 국수가 차려졌고, 이 음식으로 맛나게 배를 채운 뒤 주일학교 전체가 모이는 발표회에 참여했다. 수개월을 준비한 성극과 성가, 장기자랑 등은 교회 아니면 볼 수 없는 고급문화였다. 저녁 9시가 넘으면 하이라이트 행사가 시작됐다.
나이 지긋하신 장로님과 집사님, 대학생 형님들, 그리고 우리는 조를 나눠 새벽송을 나갔다. 그 밤은 진실로 고요했고 축복이 넘쳤다. 새벽송팀은 교회 성도들의 집 대문 앞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을 불렀다. 산타 할아버지 차림의 청년 회장의 자루엔 각 가정에서 기부한 선물이 차곡차곡 쌓였고 선물은 불우이웃에게 다시 전달됐다. 어떤 성도님은 추위에 언 몸을 녹이라며 안방과 거실을 내주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의 노래는 깊어졌고, 기쁜 성탄은 이렇게 골목과 가정에 스며들었다. 당시 우리는 성탄의 깊은 의미는 몰랐지만 새벽송을 통해 예수님이 이렇게 사람들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가 1980년대였다. 새벽송 추억을 가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시는 기독교 문화가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졌다. 한국이 기독교 국가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국가 같은 분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 종소리와 새벽송이 소음이라며 신고 대상이 됐고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학자들의 분석처럼 지금은 세계적으로 ‘크리스텐덤(기독교제국)’이 종말을 고한 시대를 맞고 있다. 다문화 다종교 속에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일 뿐이며 교회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예수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오셨기 때문이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은 오늘의 세계와 유사하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나그네’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는 바로 그런 시절을 살던 신자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전복(顚覆)적 메시지 아닌가.
대면해서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줌(Zoom)으로 새벽송을 하면 안 될까. 영상 새벽송을 모아 아프리카 아동과 우리 주변 이웃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정기 후원하면 어떨까. 아직도 연탄을 사용하는 전국 10만 주민을 위해 연탄배달 봉사를 가도 좋겠다.
대면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며 억울해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번 성탄절이야말로 예수의 성육신을 체험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자는 세상에 보내진 존재이니까 말이다. “나는 육체로는 비록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으며, 여러분이 질서 있게 살아가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골로새서 2:5, 새번역)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