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자치제 부활 30주년을 앞두고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에 관한 기본법이고, 이를 전부 개정하는 것은 32년 만이어서 의미가 크다. 자치입법권 강화,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지방자치단체 행정 효율성 강화 등은 성과로 평가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서울시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가 ‘반쪽 개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주민자치회 설치 조항이 빠졌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주권’ 확립하는 핵심 내용이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도 “민선지방자치 출범 이후 변화된 지방행정환경을 반영해 새 시대에 걸맞은 주민 중심의 자치를 구현한다”고 돼 있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는 주민자치회 설치 조항이 있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서울의 경우 전체 25개 자치구 중 22개 자치구 136개동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고 있다. 금천구는 전체 10개동 모두 주민자치회를 가동 중이다. 그간 조례에 근거해 시범 운영해온 주민자치회를 본격 실시하기 위해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으나 국회의원들이 반대해 무산됐다니 이해할 수 없다. 주민자치 없이 무슨 지방자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주민자치회는 동단위 주민대표기구로, 매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주민참여예산 및 주민세 환급사업을 선정하고 주민총회에서 인준받아 차기 년도 자치계획을 수립한다. 주민총회는 주민들이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최종 의결하는 공론장이자 직접 민주주의의 장이다. 성북구 삼선동 주민자치회의 경우 내년 자치계획으로 여성안심귀가를 비롯해 총 9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북구는 내년부터 20개 전체 동으로 주민자치회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방의회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다. 지방의회 역량을 강화하고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의원 정수의 2분의 1 범위로 제한했다. 그것도 경과규정을 두어 2년에 걸쳐 4분의 1씩 채용토록 했다. 전국 지방의회는 의원 1명당 1명의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의원 1명당 9명의 보좌진을 두고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반쪽짜리 정책지원 전문인력(27명) 도입으로 기존의 시간선택제 공무원(53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부단체장을 늘릴 수 있는 조항도 빠졌다. 서울시장이 부시장을 1명 늘리고 싶어도 행정안전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 미국 뉴욕시는 부시장이 7명이고 중국 베이징은 9명, 프랑스 파리는 23명이다. 지자체의 방만한 행정은 막아야 하지만 행정이 복합해지고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도록 부단체장 증원의 길은 열어줘야 한다.
특례시 문제도 위상과 권한을 어정쩡하게 규정해 계속 논란이 예상된다.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은 부여하되 행정·재정적 특례는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인구 100만명 이상인 경기 수원시, 고양시, 용인시와 경남 창원시는 특례시로 승격되겠지만 실질적인 자치 확대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경기도와 경남도 등 광역자치단체가 특례시 신설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 종류가 아닌 행정적인 명칭만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례시들은 실질적인 특례를 요구할 것이 분명해 광역단체와의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할 지방의회 의원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대에 인색하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자치회마저 외면하고서 진정한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은 그 답을 알고 있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