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걱정되는 예술인 고용보험

입력 2020-12-10 04:02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단편영화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했던 32살 젊은 예술가가 이웃집 대문에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 사망했기 때문이다. 최씨의 죽음은 굶주림보다는 지병 탓이 컸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지만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빈곤한 현실을 사회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1년 11월 ‘최고은법’으로 불린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1년 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됐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 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이 제정된 건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 프리랜서 예술인이 여전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 체계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인복지재단은 이런저런 사업을 통해 이들에게 시혜적 지원을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예술계에서는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예술인을 사회안전망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올해 5월 마침내 국회에서 예술인의 고용보험제도 편입을 보장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어 7월 입법예고 등을 거쳐 12월 10일부터 개정 고용보험법이 시행됨에 따라 프리랜서 예술인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이직일 전 24개월 중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되기 때문에 당장 이번 달에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내년 10월부터 받을 수 있게 된다.

개정 고용보험법은 여러 상황을 좀더 세밀하게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했지만 올해 코로나19 탓에 서둘러 시행된 듯하다. 실제로 시행하면 많은 문제점이 불거져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당장 예술계에서는 예술인의 피보험자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입장이다. 즉 고용보험법 적용 대상이 예술인복지법상 문학 미술 사진 건축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만화의 11개 분야에서 창작·실연·기술지원 및 기획 형태로 활동하는 예술인으로 한정된 것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예술인복지법에 정의되지 않은 예술활동이 많은데 이런 분야는 보험 적용 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계는 표준계약서조차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다. 노무 제공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책정되지 않거나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례로 공연계에서는 본공연 회차로 계약하고, 연습기간은 포함시키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또 사용자에게 고용보험 신고납부 의무가 있는데, 영세한 예술단체는 잘 몰라서 위반할 수 있고 방송사나 플랫폼 등 거대 사업자들은 하청이나 외주 쪽에 보험료를 떠넘길 위험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개정 고용보험법은 예술인들을 특례규정으로 포함시켰다. 예술인을 배려해 특별히 가입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여러 조사와 논의를 통해 예술인의 짧은 계약기간 및 근로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예술인의 실업급여 수급 요건으로 개별 문화예술 용역 관련 계약에서 얻은 월평균 소득 50만원 미만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럼에도 고용보험제도 운용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예술인을 포함시킨 것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고용보험기금 적자 만성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예술가 실업급여 지출로 인한 적자를 일반 근로자들의 보험료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 강화의 방향성이 옳긴 해도 예술계와 일반 시민의 인식 간극을 좁히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