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를 어찌 막나”… 살처분 당한 ‘양계인의 꿈’

입력 2020-12-09 04:06 수정 2020-12-09 10:30
8일 경기도 여주의 오리농장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농가는 전날 고병원성 조류독감(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연합뉴스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양계농가 농장주 임득순(62)씨는 8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웃 메추리 농장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 메추리 농장에서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4년전하고 똑같네요. 예방적 살처분이라지만….”

임씨는 말을 잊지 못했다. 살처분이 내려진 메추리 농장은 임씨의 농장에서 불과 1.5㎞ 떨어져 있다. 메추리 농장은 H5N8형 고병원성 조류독감(AI) 판정이 내려졌다. 3차 정밀검사에서 고병원성 AI 판정이 내려져 메추리 72만6000마리가 긴급 살처분을 당한 것이다. 이 메추리 농장은 지난 7일 H5N8형 고병원성 AI 양성판정을 받은 경기도 여주의 산란계 농장과는 불과 22㎞ 떨어져 있다.

당연히 임씨의 양계농장도 살처분 대상에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금왕읍에 산재한 가금류 사육농가들 전부도 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고병원성 확진 판정에 따라 발생 농장 반경 3㎞(보호지역) 내 가금류 농가는 예방적 살처분을 해야 하고 발생지역인 음성지역의 모든 가금농장에 대한 이동이 7일간 제한된다.

임씨는 “안 그래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데 AI까지 덮쳐 죽을 지경”이라며 “비상사태나 다름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농장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생석회도 뿌리지만 철새를 어떻게 막겠느냐”며 “AI 발병으로 살처분도 걱정이지만 건강한 닭·오리 판매까지 부진할까봐 안절부절”이라고 했다.

메추리 농장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박열희(62) 음성양계협회 회장 역시 “코로나19만큼이나 조류독감이 걱정”이라고 했다.

고병원성 AI는 지난달 26일 전북 정읍의 오리농장을 시작으로 경북 상주, 전남 영암, 경기도 여주, 충북 음성 등지의 가금류 농장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지경이다. 방역당국은 전국 어디도 AI 안전지대는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발병한 4개 농장과 충북 음성군 메추리 농장까지 5곳을 조사한 결과 역학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 동떨어진 5개 시·군에서 발생했지만 농장 간 수평 전파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주요 원인은 철새를 통한 전파로 여겨진다. 지난 10월 21일부터 8일까지 1개월여의 기간 동안 야생 조류 분변에서만 23건의 고병원성 H5N8형 AI 확진 사례가 나왔다. 그것도 전국 각지에서다. 박병홍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8일 “AI 바이러스가 전국 모든 가금 농장의 주변까지 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부실한 방역도 AI 확산을 우려하게 만든다. 농식품부 역학조사 결과 첫번째 확진 농장인 전북 정읍시 소재 육용오리 농장의 경우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생석회를 뿌리지 않았다. 두 번째 확진 농장인 경북 상주의 농장 역시 생석회를 뿌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 세종=홍성헌 신준섭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