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사이 섬처럼 고립된 곳,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인 강남 구룡마을로 구형 아반떼 한 대가 들어왔다. 조용하던 마을이 분주해졌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나오더니 김명혁(83) 강변교회 원로목사를 반갑게 맞았다.
김 목사는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마다 이곳을 방문한다. 6월부터 했으니 벌써 7개월째다. 지난 10월에는 구룡마을에 있는 소망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12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김 목사는 올 때마다 마을 내 40여 가정에 사비를 들여 빵과 함께 성금 3만원씩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5일에도 주행거리 44만㎞의 낡은 차에 빵을 한가득 싣고 왔다.
김 목사는 익숙하게 무리들 사이에서 문순자 할머니를 찾았다. 오래전 마을 통장을 했던 문 할머니는 이곳 지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이곳에 산 지도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도심 개발 과정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계획 없이 형성된 곳이라 자칫 잘못 들어갔다가는 길을 헤매기 쉽다. 두 번의 큰 화재로 이재민들이 발생해 지금은 비어있는 곳도 많다.
김 목사와 구룡마을의 인연은 김 목사가 강변교회를 담임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인들과 함께 2~3번 봉사를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6월 갑자기 구룡마을이 생각이 났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데 하나님께서 구룡마을 주민들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김 목사는 곧장 구룡마을로 향했다. 문 할머니도 그때 처음 만났다. 문 할머니는 “어떤 분이 길을 묻기에 헤매는 줄 알고 알려줬다”며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 안내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 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모인 사람만 20명이 넘었다. 문 할머니는 “목사님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 무릎이 아플까 봐 오늘은 주민들이 이렇게 나와 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가져온 빵과 성금을 전달하며 “그간 건강하셨느냐. 이렇게 또 한 달 지나 보게 돼서 반갑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꾸준히 오기 힘든데 이렇게 매달 도움을 주신다”며 김 목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민들의 배려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마을 어귀에서 만났지만, 김 목사는 문 할머니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거동이 불편한 이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성인 남성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골목을 김 목사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계세요”라는 김 목사의 인사에 하나둘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왔다. 코로나19로 일용직 일도 끊겨 집에 앉아만 있다는 A씨는 김 목사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가정에는 문 앞에 쌓인 집기류 밑에 빵과 성금을 고이 넣어뒀다. 김 목사는 문 할머니와 함께 그렇게 스무 가정을 더 돌았다. 김 목사는 만나는 가정마다 안부를 묻고 끝인사로 “다음 달에도 봅시다”라고 말했다. 목사라고 밝히지 않았는데도 주민들은 ‘목사님, 목사님’하며 반겼다.
김 목사는 “만나는 분들이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지만, 그걸 강요하진 않는다”며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 그들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만큼은 지니고 사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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