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혼모 허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도 궁극적으로 미국처럼 정자은행이 상업화 활성화돼야만 하는 걸까.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두 비배우자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보건복지부 학술용역과제인 ‘외국의 정자 기증 수증 시술 현황, 정자은행 운영 법규정, 지침 및 관련 자료’에 따르면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비배우자 인공수정을 금한다.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허용된 미국에서 최대 규모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클릭 한 번으로 성별은 물론 생김새, 체형, 머리카락 색깔까지 ‘맞춤형 정자’를 고를 수 있다.
2010년에 이미 ‘정자은행은 불황을 모르는 백색 금광이다’ ‘0.9%의 선택된 소수만이 기증자가 될 수 있어서, 하버드대학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1980년대까지 고객의 90%가 불임부부였지만 2010년에는 65%가 레즈비언 커플이다’라는 평가가 있었다.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허용된 영국을 살펴보면, 영국 의회가 2013년 7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동성 커플의 정자 수요가 20% 증가했다. 일본은 1995년 상업 목적의 정자매매 활동이 양성화되자 일본산과부인과학회(JSOG)가 이를 규제할 목적으로 97년 ‘비배우자 간 인공수정과 정자 기증에 관한 견해’를 내놨다.
문제는 기증자를 속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불임 전문의 얀 카르바트는 기증받은 정자라 속이고 여성에게 자신의 정자를 사용해 56명을 출산케 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불임 전문의 도널드 클라인도 기증받은 정자라 속이고 여성에게 자신의 정자를 사용했다. DNA 검사 결과 61명이 그의 생물학적 자녀였다. 2000년부터 정자를 기증해 36명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된 크리스 아젤레스는 조현병을 앓고 있고 대학을 중퇴한 강도 전과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처럼 기증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가 사용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해당 자녀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남아공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 보고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녀들의 정체성 문제다. 자신의 DNA가 시술 의사와 일치하는 것을 알게 된 이브 윌리는 “사람은 유전적 정체성 위에 인생을 엮어가는데, 그 기초가 허물어지니 심적으로 황폐해졌다”고 했다. 그의 정체성을 더욱 흔든 것은 DNA 테스트를 받기 전 정자 기증자라고 확신하는 사람을 찾아내서 아버지라 믿고 돈독히 지냈기 때문이다. 그가 낳은 아이들도 그를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자신을 윌리의 생물학적 부친이라 믿었던 남성도 테스트 결과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름다운 부녀관계’를 계속하기로 했다.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최근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 이사장은 “국가가 좋은 정자를 선별해 아이들을 출산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좋은 정자 선별’이라는 표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외국처럼 비혼모가 명품 가방 고르듯 정자를 쇼핑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과연 어떻게 될까. 우생학적으로 더욱 완벽한 아기를 갖기 위해 결혼한 부부조차 정자와 난자를 쇼핑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기증 정자로 태어난 자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결국 생물학적 부친을 찾게 된다. 그런데 생물학적 부친의 조건이 뛰어나서 자신 말고도 수많은 자녀가 있고, 제대로 된 관계 형성조차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비혼모가 허용될 경우 처음에는 비영리 정자은행만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미끄러진 경사면 논리에 따라 결국 더 나은 조건의 정자를 원하는 여성들의 요구가 반영될 것이고 영리 정자은행도 허용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생명윤리가 무너지는 현상이 초래된다. 비혼모 허용은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선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