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체제가 출범했을 때 ‘시리주’라는 조어가 유행했다. 두 사람의 성에 팀을 뜻하는 한자 조(組)를 붙여 만든 말이다. 그러나 시 주석 1인 독주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 표현은 쏙 들어갔다. 중국 권력 서열 2위인 리 총리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리 총리가 결정적 시기마다 한 번씩 뼈 때리는 말을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2035년까지의 장기 발전 계획을 제시하자 “인민대중이 소득 분배에 느끼는 불만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하거나, 시 주석이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와중에 “기초연구 분야가 취약하다”고 찬물을 끼얹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5월 빈곤 발언은 결정타였다. 그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구의 40%에 달하는 약 6억명이 월 수입 1000위안(약 17만원)으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이 빈곤선으로 정한 기준이 하루 수입 5.5달러다. 월로 환산하면 160달러, 중국 돈으로 치면 1000위안이다. 시 주석의 역점 사업인 빈곤 퇴치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중국에서 경제는 총리의 몫이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등 경제 관련 국제회의에 주석이 아닌 총리가 정상 자격으로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리 총리는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대신 시 주석은 심복이자 경제 책사인 류허 부총리를 내세워 경제 분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주룽지, 원자바오 등 역대 중국 총리들에 대한 평가는 남겨두더라도 어쨌든 이들은 재임기간 중국 경제를 책임지고 총괄했다. 리 총리는 2022년 당대회를 거쳐 2023년 3월 전인대에서 후임 총리가 지명되면 물러난다. 그러나 시 주석은 아니다. 현재 시 주석 임기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 전인대가 2018년 ‘국가주석 연임은 두 번을 넘을 수 없다’고 한 헌법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2035년을 사회주의 현대화 목표 시한으로 정하고 장기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장기 집권으로 가는 명분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한 팀으로 시작했지만 끝이 다른 이 상황이 리 총리의 돌출 발언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 사정을 잘 아는 베이징의 한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시진핑 시대 국가주석과 총리의 관계는 상하 관계로 변질됐고 물러나는 총리에게 국정 실패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먼저 떠나는 사람 입장에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 총리가 퇴임 후 평가를 의식해 경고성 발언을 남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리 총리는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이 가능할 만큼 경제 지식이 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총리 중 박사 출신은 그가 처음이다.
중국에선 간간이 나오는 리 총리의 소신 발언을 제외하면 시 주석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년 전 미·중 무역전쟁 때만 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 주석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표출됐는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들다. 공무원들은 사석에서 으레 최고지도자를 험담하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시진핑의 ‘시’자도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 전반이 통제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 주석 1인에 대한 권력 집중과 통제는 미국과의 패권 대결, 코로나19 대응 국면을 거치며 정당성과 효용성마저 얻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여기에 극단적 애국주의가 더해져 세계 곳곳에서 반감을 사고 있다. 한국의 반중 여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가치 동맹 복원을 내세우는 이때 굳이 사방을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