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 풀잎의 그늘 속에서 예감하는 저녁은 꽃송이처럼 밤을 연다. 농가에는 들에 나가 있던 인부와 가축들이 돌아오고 항구에는 바다를 낚던 선박들이 돌아온다. 밤의 지붕 아래 상점들이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하면 비로소 도시는 비 젖은 야생초처럼 활기를 띤다. 크고 작은 빌딩에서 물방울처럼 튀어나온 사람들이 물결이 돼 흘러가는 거리는 갓 캐온 채소처럼 푸르고 싱싱하다. 흥성스러운 골목 속으로 나는 한 마리 야생이 돼 컹컹 짖으며 걷는다. 저녁은 내 생의 자궁, 나는 날마다 저녁에 태어나 아침에 죽는다.
과거의 한때는 순간순간에 소환돼 지금의 생생한 느낌 속에 용해된다. 연기로 하루를 열고 닫던 시절이 있었다. 조석으로 집의 굴뚝을 타고 피어오르던 연기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멀리 떠나 있다가 해거름이 돼 귀가할 때면 호명처럼 손 까불며 반기던, 결 곱던 푸른 연기가 어제의 일인 듯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저물녘 마을의 밥 짓는 풍경은 그럴 수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굴뚝을 빠져나오는 연기는 약속이나 한 듯 뒤꼍을 한 바퀴 휘돌아 나무의 영혼인 양 산속으로 기어든다. 자작자작 밥물이 잦아들 즘 화력을 줄여 뜸을 들이고 나면 동굴 속처럼 어둠이 고인 부엌에서 머릿수건을 풀면서 나온 어미들이 사립에 서서 오래된 약속처럼 고샅을 향해 자식들 이름을 부르며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어미들의 괄괄한 목청으로 온종일 적막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마을은 잠시 잠깐 장터의 쇠전처럼 소란으로 반짝, 부산스럽다가 이내 곧 깊은 적요의 바닷속으로 잠겨 들었다.
겨울 저녁 강변을 걷다 보면 어둠이 멍석처럼 깔리는, 길게 활처럼 휘어진 강과 길이 왈칵,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완만한 곡선은 하늘의 손이 그은 것, 누구도 지울 수 없고 누구도 함부로 지워서는 안 되리. 반원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저장단의 가락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시킨 일, 어느 때는 웃고 어느 때는 울부짖는다.
나는 한지에 먹물처럼 번져오는 땅거미가 좋다. 막 펼쳐지기 시작한 어둠의 치마폭에 철없는 아이로 안겨 있으면 달콤한 몽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그리움의 근친들은 아득한 시간의 둑을 걸어와 불쑥 나를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어둠이 밀물처럼 잔잔하게 몰려와 내 생의 안쪽을 물들이고 이성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나를 감성의 나라로 이주시킬 때 은폐된 신의 선물 같이 시의 씨앗 한 알 우연히 마음의 뜰에 떨어져 발아하기도 한다.
어둑어둑해지는 때에 나는 우리로 돌아가는 가축의 심정이 되지만 더러는 위험한 충동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불쑥, 가출에의 욕망으로 가장을 벗고 건달로 갈아입고 싶어지기도 한다. 오, 저녁이여, 팜므파탈이여.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오세영 시 ‘12월’ 전문)
홀로 시간의 언덕을 넘는다. “이쪽의 대지에서 해가 지고 있을 때 저쪽의 바다에는 해가 뜨고 삶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고동칠 수도, 잿빛 어스름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김호균 시 ‘해가 뜨고 질 때’) 생각하며 점화의 순간처럼 붉게 타오르는 서녘 노을을 눈에 담는다.
저녁 공기는 딱딱해지고, 강안에서 태어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바람이 불어와 옷섶을 헤치고 막 돋아난 땀방울의 꼭지를 비틀어 딴다. 하루가 등을 보이며 멀어지고 난 갑자기 찾아온 무서운 기억을 지우려 숨차게 어머니의 강을 건너 아버지의 마을로 되돌아온다. 한 마리 된새가 나를 따른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