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콕을 한다. 서울 명동은 가봐야 하는데,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불빛 아래를 걸어야 하고 골목길의 고깃집에 서서 갈비를 구워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엔나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올해는 못 간다. 긴긴 겨울밤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 갇히니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
겨울밤의 소리는 “소복소복”이 아니고 “메밀무욱~ 찹쌀떠억~”이었다. 메밀묵은 어떤 맛인지 모른다. 어른들이나 먹었다. 찹쌀떡은 아직도 그 맛이 혀끝에 남았다. 뽀오얀 전분에 쌓인 그 쫄깃했던 찰떡은 달콤한 팥소와 함께 입에서 황홀하게 섞이었다. 겨울밤에 “메밀무욱~ 찹쌀떠억~” 소리가 들리는 동네에 사시는가. 그런 동네가 아직도 있는가. 행복하시겠다.
붕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붕어빵 가게를 끼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인터넷에서는 역세권보다 관심이 더 높다. 붕세권 전국 지도까지 만들어졌다. 붕어빵은 겨울에 먹어야 맛이 난다.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바람은 매서워야 하고 붕어빵은 빵틀에서 막 꺼내어 김이 모락모락 나야 한다. 한 입 베어 물고 헛헛헛 뜨거운 김을 뱉으며 혀로 붕어빵 조각을 돌려야 한다. 멀리서 사온, 식어빠진 붕어빵은 붕어빵이 아니다. 붕세권이 겨울밤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삶터이다. 붕세권에 사시는가. 행복하시겠다.
붕세권에 약간 밀리는 감이 있지만 풀세권도 핫플레이스다. 붕어빵과 풀빵이 비슷하다거나 심지어 풀빵이 붕어빵보다 저급하다는 시선이 있는데, 오해다. 일단, 제조법이 다르다. 붕어빵은 위아래의 틀 안에서 구워진다. 풀빵은 한 면이 노출된 채 구워진다. 풀빵 반죽은 붕어빵 반죽보다 무르고 또 한 면이 노출돼 구워지니 붕어빵보다 부드럽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붕어빵은 10분 정도의 이동 거리를 허용하지만 풀빵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야 한다. 풀세권에 사시는가. 붕세권보다 두어 배 행복하신 거다.
겨울밤 덕수궁 돌담길을 걷지 않았다면 연애를 한 것이 아니다. 그 길을 걸었어도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아 내 외투 주머니에 넣고 걷지 않았다면 참 싱겁게 연애를 한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 모퉁이에서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사서 서로의 입에 넣어준 적이 없다면 뜨거운 연애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 군밤장수가 사라졌다 해도 크게 서운할 것 없다. 연애할 일도 없고, 연애의 추억만으로 행복하다.
겨울밤 외가에는 침시가 있었다. 떫은맛을 빼기 위해 소금물에 우린 감이 침시이다. 하나 먹으면 배가 부를 만큼 컸다. 소금기가 남아 짭조름했고 큼큼한 쉰내가 올라오기도 했다. 저녁 먹고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 드라마 듣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침시를 내어왔다. 외할머니 손은 침시처럼 항상 축축했다. 이런 외할머니 없었던 사람 있는가.
할머니 방은 보물창고였다. 장롱 제일 밑 칸에 보물이 들었다. 할머니 심심할 때 드시라고 넣어둔 주전부리가 가득했다. 그 중에 제일의 보물은 곶감이었다. 내 항렬이 ‘익’이다. 형제와 사촌 모두 익자 돌림이다. 할머니가 “익아” 하고 부르면 익자 돌림을 쓰지 않은 손녀까지 우르르 할머니 방으로 몰려갔다. 보물창고가 열린다는 뜻이다. 까맣고 딱딱한 곶감이 하나씩 주어졌다. 이런 할머니 없었던 사람 있는가.
겨울밤에 귤을 구웠다. 난로 위에 귤을 올리고 까뭇까뭇해질 때까지 구웠다. 뜨거운 귤을 손가락 끝으로 잡고 껍질을 까면 스르르 김이 올랐다. 바로 베어 물면 화상을 입는다. 호호호 식히면서 조심조심. 방안에 귤 향이 가득했다. 그때에 방안에는 어렸던 나와 형 둘, 동생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머지는 흩어져 산다. 귤 굽던 그 겨울밤은 제각각의 추억으로 남았다.
겨울밤 추억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행복하신 거다. 코로나19의 겨울밤에도 추억은 쌓일 것이다.
황교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