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년 탄소(이산화탄소) 중립’ 선언을 달성하기 위한 밑그림을 최초로 공개했다. 전기를 만드는 원재료를 탄소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와 같은 연료로 전환하는 작업이 뼈대다. 여기에 산업 현장 변화를 더 한다. 제조 공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았던 석유화학 업종 등의 경우 체질을 뜯어고칠 계획이다. ‘친환경’을 중심에 두고 한국 경제의 전체 틀 자체를 새로 짜겠다는 원대한 구상이 담겼다.
취지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 면에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탄소 중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논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0’인 원전은 전략에서 쏙 뺐다. 산업 현장의 공정 자체를 뜯어고치는 작업 역시 산업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근본적인 물음도 제기된다. 환경을 강조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과 환경에 유해한 ‘가덕도공항’을 밀어붙이는 이율배반적 행태가 맞느냐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탄소 절감 의지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7일 발표한 ‘2050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의 핵심은 모든 경제 영역에서 저탄소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발전과 산업, 건물, 수송 분야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 궁극적으로는 2050년에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구상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분야부터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발전 비중의 40.4%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한다.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역시 궁극적으로는 줄여야 할 대상이다. 빈자리는 탄소 배출이 없는 신재생에너지로 채운다. 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 수소’ 보급률을 2050년까지 8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치 등이 세부 실행 방안으로 담겼다. 전력 주요 공급원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산업에서도 구조조정을 유도한다. 특히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군부터 체질을 바꾼다. 스마트공장 등을 통해 제조업 공정을 저탄소화하는 식이다. 수송 분야는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대체한다. ‘제로 에너지 건축 의무화’나 ‘개발제한 구역 보전 추진’ 등과 같은 대책도 곁들인다.
이를 위해 재정·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기업 투자 확대를 돕는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투자세액공제 등의 혜택이 더해지면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 세부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아마도 에너지세 개편을 통해 주된 수입원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아직 밑그림 수준이지만 벌써 우려가 따라붙는다. 에너지 분야의 경우 원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담지 못했다. 탈원전 목표대로라면 2050년에 운용 가능한 원전 수는 9개다. 26기를 운용한 지난해 기준 원전 비중은 25.9%였다. 산술적으로 보면 국내 에너지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 역시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 개편 방향성을 담지 못한 점도 약점이다. 전기요금 인상 우려가 있다고만 언급하고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산업계 변화를 유도하는 일도 쉽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이를 정부 주도로 추진하게 되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규제란 형태로 목표 달성을 종용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의 수’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목표를 달성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원점으로 돌아간 동남권신공항 계획이 좋은 사례다. 여당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환경성’ 분야에서 최하점을 준 가덕도공항을 설치하겠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을 뒤집었다. 환경을 해치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비판하더니 내년 SOC 예산은 올해(23조2000억원)보다 14.2% 늘린 26조5000억원을 편성했다. 정치적 필요성이 있다면 언제든지 계획이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정권이 바뀌면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유럽연합보다 더 빠르게 탄소 제로를 하겠다는 내용인데 너무 전향적이라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신재희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