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내년 ‘태평양 억지 구상’ 신설… 中 견제 초당적 주문

입력 2020-12-08 04:01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가 지난 9월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하는 모습. 니미츠 뒤로 미사일 순양함 필리핀시가 보인다. 미국 서북부 브레머튼에 모항을 둔 니미츠는 지난 7월부터 아라비아해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 중이다. AFP연합뉴스

미국 상·하원이 합의한 2021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인 국방수권법(NDAA)에 ‘태평양 억지 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항목이 신설되고 22억 달러(약 2조3900억원)가 배정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한층 더 강경하게 대응하라고 의회가 초당적으로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WP는 “태평양 억지 구상은 이번 국방예산법안에서 중국을 겨냥한 대표적인 조치”라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에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 구상은 유럽 지역의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해 20014년 도입했던 ‘유럽 억지 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WP는 덧붙였다.

다만 이번 예산법안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 내역은 확정되지 않았다. WP는 “의회가 중국 견제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 새로운 체계와 재량권을 넘겨줬다”고 분석했다. 미국 의회 내 국방전문가들은 태평양 억지 구상의 전개 여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무엇을 할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WP는 2022회계연도에는 태평양 억지 구상에 배 이상의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언급이 있었다고 전했다. 내년 이후엔 중국 견제 국방예산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국장은 이번 법안에 대해 “의회가 바이든 행정부에 (중국 문제와 관련해) 전진하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태평양 억지 구상에 따라 미 국방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태세와 방어능력을 증진하고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미군 주둔 병력의 현대화와 강화 등이 포함된다. 국방장관은 관련 보고서를 2021년 2월 15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에는 버지니아급 공격용 잠수함 2척 건조를 위한 예산도 포함됐다. 중국의 강력한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미 해군은 1척용 예산만 요청했는데 의회에서 2척용을 편성한 것이다. 하원은 이번 주 초 법안을 표결할 예정이며, 상원 표결은 그 이후에 이뤄진다.

WP에 따르면 국방수권법안에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 현재 주둔 규모인 2만8500명 이하로 줄일 경우 미 국방부에 최소 90일 이전에 이를 알릴 것을 지시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 규정은 주한미군 감축을 막는 자물쇠는 못 된다고 해도 미국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할 경우 이를 견제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한·미동맹 복원을 강조하고 있어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현재 규모에서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초당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이다.

다만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5G 기술을 사용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자국 군대와 주요 군사 장비를 배치하는 것을 재고하라고 한 조항이 국방수권법안에 포함된 것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 경우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