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존경하는’ 박창환 학장님

입력 2020-12-08 03:01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인 분이 장로회신학대 스승이신 박창환 학장님(1924~2020)이다. 비교적 내성적이었던 내가 자발적으로 성탄 카드와 안부 편지를 보내드린 분이었고, 거리낌 없이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자랑했던 분이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 학장님처럼 살면 예수님을 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박 학장님은 지난달 15일 97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스물 갓 넘은 나이로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누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도움을 청하기도 부담스러웠다. 이때 갈 곳 없는 나를 학장실에 잠시 머물도록 해주시고 말없이 보호해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을 계속하기로 작정한 후, 나는 유학을 떠났고 미국에서 학장님을 다시 만났다. 첫아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내와 함께 가까이 살고 계시던 학장님을 찾아뵈었다. 사모님이 대접해주신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은 후, 박 학장님께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 부탁드렸다. 왠지 박 학장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꼭 들어주실 것만 같았다.

그 후 선친(고 탁명환 소장)의 죽음, IMF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유학 시절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박 학장님의 소식을 이따금 검색하며 그분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중 2013년 5월 우리 학교에 모셨다. 내가 소장으로 있는 부산경남교회사연구소에서 주최했던 6·25전쟁 휴전과 부산장신대 설립 60주년을 맞아 개최한 공개 학술강좌였다. ‘한국 신학교육의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강의를 부탁드렸다. 학생들에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의 강의를 들려줄 수 있어서 마냥 행복했다. 강의 시작 전 잠시 연구실 소파에 누워 쉬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부모님이 내 집에서 쉬시는 것처럼 기뻤다.

기왕 부산에 오신 김에 지역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드렸다. 박 학장님을 교회로 모시고 가는 길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드렸다. “학장님, 제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박 학장님의 대답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학장님은 나에게 “먼저 사람이 되면 된다!”고 하셨다. ‘좋은 선생’과 ‘좋은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셨다. 이 말씀은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이런저런 욕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릴 때마다 ‘먼저 사람이 되자’고 되뇌곤 한다.

이제 박 학장님처럼 신학 교수로 살고 있지만, 박 학장님에게 신약과 헬라어 강의를 들을 당시 나는 별 볼 일 없는 신학생이었다. 학부 졸업 평점은 지금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었다. 교수님들에게 살갑게 다가서는 성격도 아니었고, 공부보다는 고민을 안겨드렸던 문제아였다. 그런 내가 박 학장님 같은 분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지금도 제자들을 대할 때면 박 학장님을 떠올린다. 못난 나를 편견 없이 받아주셨던 학장님을 생각할 때마다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학생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신뢰에는 불신과 아픔이 뒤따를 수 있지만, 사랑에는 배신이나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박 학장님은 나를 믿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박창환 학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후 처음 든 생각은 ‘이제 나에게는 스승이 없구나!’라는 허탈감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내가 좋은 스승인지 생각할 때마다,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박 학장님 말씀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창환 학장님, 참 감.사.합.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