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벌어지고 있는 진흙탕 싸움은 결국 ‘정치의 사법화’가 심해진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의 영역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고소·고발 등으로 사법의 영역에 떠넘기는 빈도가 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상대 진영에 ‘판정승’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상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시도들이 자주 포착된다. 총선을 1년 앞둔 지난해 4월 벌어졌던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이 대표적이다. 상호 간 물리적 충돌 이후 양당은 경쟁적으로 상대 당 의원을 폭행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맞고소전’에 나선 바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6일 “정치인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 민사 차원에서 끝낼 사소한 문제까지도 형사 절차로 처리하려고 한다”며 “이는 정책 심의에 사법의 영역을 끌어들이지 않는 선진국의 정치와 다르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결국 정치권의 ‘검찰 개혁’ 추진에도 큰 걸림돌이 됐다고 본다. 크고 작은 사안마다 검찰에 판단을 맡기며 ‘칼자루’를 쥐여 주던 당정이 검찰의 권력 분산을 외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정이 검찰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과 상대 당을 설득시키기보다는 무리하게 검찰총장을 찍어 내리려 했던 과정에서도 정치의 사법화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명령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명령이 합당한지 판단을 내린 것은 사법기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법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모조리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법이 어디까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사법기관은 국민의 선거권이 반영되는 곳이 아니다. 쟁점을 두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숙의를 거쳐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입법기관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치가 사법 만능주의에 빠질수록 소통과 협치는 사라지고 모든 사안이 ‘유죄냐 무죄냐’는 극단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실제 정치권에서 행정 수도 이전 문제(2004년) 등의 판단을 헌법재판소에 위헌인지 결정해 달라고 떠넘긴 것은 대표적인 정치 실패 사례로 꼽힌다. 사법의 영역이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정치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절충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촘촘한 부분까지 개입할 수 없는 법의 성격을 보완한다”며 “이런 면에서 정책에 대한 자신이 없는 정치권이 이를 가리기 위해 상대 진영에 소송을 걸며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야말로 정치 무능을 입증하는 가장 부끄러운 정치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