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에너지 차관 신설, 복지부동 부채질?

입력 2020-12-07 04:06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 차관 신설’ 선언을 접한 산업통상자원부 내부 분위기는 착잡하다.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차관을 3명이나 보유하게 된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소속 공무원들이 영전할 수 있는 자리가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에너지 차관의 불운했던 말로를 되돌아보면 선뜻 반색하기 힘든 분위기다. 원전 수사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구속된 점도 부담을 더한다. 에너지 차관 예하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우려되는 동시에 자칫 ‘종이호랑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부정적 인식을 촉발한 건 이명박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부(지식경제부)는 산업 정책 담당 1차관과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2차관 체제로 운영됐다. 에너지 차관 역할을 2차관이 했던 것이다. 그런데 뒤끝이 좋지 않았던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2011년 5월 2차관으로 임명된 김정관 전 2차관은 불과 7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취임 4개월 만에 터진 대정전 사태에 책임지는 형태로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전임자인 박영준 전 2차관 역시 뒤끝이 좋지 않았다. ‘왕차관’이란 별칭이 붙은 실세였지만 2012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사건으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적극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은 지금까지도 실패 사례로 박 전 2차관을 따라다닌다. 그만큼 덜컥 맡기엔 부담스러운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점 또한 부담을 키우는 대목이다. 에너지 차관은 탈원전을 비롯해 ‘탄소 중립’ 등 정부의 역점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손발을 맞춰야 하는 에너지 부서 실무진들이 적극 나서줘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 부서는 산업부 안에서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업무를 맡았던 국장 및 서기관 2명이 지난 4일 구속된 초유의 사태는 이 현상을 심화시켰다. 열심히 일했다가는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인식은 공무원들을 소극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적극 행정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산업부 한 관계자는 6일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정무직도 아닌 실무진이 잘 따를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