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202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마스크 주·부시대’.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끼고 사는 내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역대 가장 뜨거웠던 한 해였다. 이달 들어 코스피는 사상 처음 장중 2700선을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최다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국 역시 지난 4일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사상 최고치로 마감됐다. 올해 주식시장엔 ‘주린이’와 ‘빚투’에다 동학·서학개미까지 유행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결국 물러나기까지 했지만 부동산 시장도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에 사상 최고 수준으로 돈이 몰리게 된 데는 초저금리 영향이 크다. 역대급으로 싼 이자에 돈이 마구 풀리더니 금과 채권 같은 안전자산에서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에까지 돈이 쏠리고 있다. 이달 초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최근의 자산투자시장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점점 더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잇따른 경기 회복 전망에 증시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유동성에 주식 투자를 부추기는 디테일한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유튜브에는 ‘투자의 신’ 같은 류의 콘텐츠에 구독자가 몰리고 있다. 카카오뱅크 같은 모바일 은행 가입자들은 클릭 몇 번만 하면 단돈 1000원부터 해외 유망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남녀노소, 학생과 직장인, 자영업자 할 것 없이 주식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빚의 무게다. 부채 수위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차 싶은 금융 당국은 금융권으로 하여금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에 제동을 걸게 했다. 증권사는 빚 내 투자하는 신용융자를 중단하고 있다.
시장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속속 상용화되고, 내수와 수출에 온기가 돌면서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큰 이견은 없다. 그런 한편으로 구조조정과 함께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올 한 해 자금이 쪼들린 기업들은 빌린 돈으로 급한 불을 껐다. 많은 기업과 개인의 채무상환유예 만료 시점이 내년 6월이다. 그 뒤부터는 이자에다 원금까지 갚아 나가야 하는데, 과연 그만큼 형편이 나아질까.
만약 이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는 방향으로 돌아서면 최악의 전조가 될 수 있다. 가계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가계 부채 대부분이 부동산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빚을 내 주식 투자에 나선 개미 투자자들도 휘청일 수 있다. ‘내년에 내 돈을 어떻게 굴릴까’를 고민한다면 먼저 내가 가진 빚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빚의 무게는 비만과 비슷하다.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이자 갚기가 비교적 수월한 초저금리 상황은 더욱 그렇다. 진 빚이 많아도 낼 이자는 많지 않아서 괜찮다는 착각이 들기 쉽다.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 층일수록 둔감해지기 쉽다. 둔감해진 빚의 무게 때문에 벼락부자를 꿈꾸다 벼락 거지로 나앉을 수 있다.
동시에 우려스러운 건 ‘한탕주의’ 망령이다. 주식·부동산 열풍 속에서 반나절에 한 달 치 월급만큼의 수익을 벌었다느니, ‘신의 한 수’ 아파트 투자에 평생 돈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는 성공담은 자칫 현실에 등을 돌리게 만든다.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의 가치, 밤새도록 가게를 지켜 건진 하루 매상이 갖는 의미가 헛돼선 안 된다. 하지만 ‘열심히만 해서는 돈 못 벌잖아요’라고 누가 말하면 마땅히 해줄 말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