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문명에 대한 책임

입력 2020-12-04 04:02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21세기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의 경험은 온 인류가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줬다. 기독교의 관심이 그동안은 개인 영혼의 구원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둬왔다면, 이제는 문명의 구원에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관념의 모험’이란 책에서 서구 문명의 역사는 기독교가 주창한 도덕적 이상을 사회의 각 구성원이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변혁시켜온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문명의 구원이라 하면 아직은 막연한 느낌이 들지만, 다음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문명에 대한 책임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첫째 사례는 성 패트릭(386∼461년)의 아일랜드 선교이다. 성 패트릭은 어릴 때 아일랜드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6년 만에 기적적으로 탈출한 후 꿈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아일랜드인들의 호소를 듣는다. 이어 12년간 철저히 준비하고 나서 432년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아일랜드 사정을 잘 알던 성 패트릭은 토속 종교와 풍습을 존중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잘 전파했다. 또 교회를 위계적 조직이 아니라 부락 단위의 평등한 생활공동체로 운영했다. 수도원을 통해 학문을 장려했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했으며, 자연친화적인 켈트적 영성의 토대를 쌓았다. 약 30년의 선교 활동을 한 후 그가 죽었을 때 아일랜드 전체가 기독교를 믿게 됐다.

이는 어떤 군사적·정치적 강압이 아닌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통한 선교적 결실이었다. 성 패트릭 사후에도 아일랜드 기독교는 계속 성장했다. 특히 학문적으로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했다. 수도원에서 고전어를 익힌 인재들이 수많은 책을 필사해 보관했다. 나중에 유럽 대륙의 도서관 대부분이 전쟁 때문에 불타 없어졌는데 아일랜드에서 필사해 보관했던 책들이 없었더라면 고대 고전 중 많은 부분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특히 이런 모범적 선교가 5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둘째 사례는 1889년 북간도에 세워진 명동촌 마을이다. 윤동주 고향인 이곳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뜻을 모은 몇 가문이 집단이주해 계획적으로 형성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나라를 구하려면 기독교를 믿어야 하고 신학문을 가르쳐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를 해 일찍부터 교회와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1917년 윤동주가 태어났을 때 명동촌은 기독교가 마을 사람들에게 영적인 구원과 사회적 해방의 방도를 제시했던 지역이었다. 또 전통 사상과 서구 사상이 만나 사상적 지평의 융합이 일어나는 곳이었고, 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을 통해 자주적으로 자연친화적 농촌공동체를 운영하면서 독립의 꿈을 다졌던 공간이었다. 1911년 마을에서 열린 부흥회 강사 이동휘가 한 다음의 설교를 보면 명동촌의 신앙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무너져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예수를 믿어라! 학교를 세워라! 삼천리강산 한 마을에 교회와 학교를 하나씩 세워, 삼천 개의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는 날 우리는 독립할 것이다.”

오늘 지구와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많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 경제·정치적 억압은 물론 정신적 압박도 심각하다.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 과연 기독교는 인류 문명을 구원할 준비가 돼 있는가. 두 사례를 보면 기독교가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존중하고, 생태적 관심을 가질 때 문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여기서 출발해 기독교가 문명에 더 깊고 넓게 공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 인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