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나바다’의 시간

입력 2020-12-04 04:02

한 철만 지나도 그 전에 쓰던 물건들을 다시 쓰지 않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 어릴 때에는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던 것이 애들이 크면서 안 쓰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빡빡했던 회의나 모임들이 취소되는 요즘, 집안 곳곳에 박혀 있는 그런 물건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요새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멀리 나가기보단 가까운 동네에서 중고거래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가족에게 말해보니, 아이가 학교에서 했던 아나바다 장터가 생각난다고 했다. 곧장 무료로 나누거나 팔 만한 몇 가지를 추려 깨끗이 손질한 뒤 검색해본 대로 물건을 올렸다. 익숙지 않은 과정들이 조금은 귀찮기도 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하나둘씩 물건을 정리하면서 얻은 것은 금전적 이득이나 집안 공간의 여유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아이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지금 무심코 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더 아껴 쓰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모여앉아 자원의 한계와 재활용의 가치,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았다. 안전을 위해 집 앞보다는 근처로 나가 물건을 주고받다보니 잠시라도 걸으며 운동을 하는 시간도 덤으로 얻었다. 우리 집에서는 갈 곳 없이 방치되던 물건이 새로운 곳에선 딱 알맞은 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기뻤다. 방역과 안전만 조심하면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자연도 위하는 일이니 뿌듯하다.

온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생존법을 배워가며 버티는 이 초유의 시기에 하나씩 물건들을 정리하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란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물건을 다루는 것도 결국은 잘 떠나보내는 걸 배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렇게 또 하나, 아쉽더라도 소중한 추억이 남도록 잘 사용한 뒤 적당한 때에 잘 보내는 것을 배운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