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왜 다른 왕에 비해 주역을 더 공부했나?

입력 2020-12-03 19:30

“임금이 한번 생각을 잘못하면 정치에 큰 해를 끼치고, 임금이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사업을 망쳐버립니다.”

율곡 이이가 ‘성학집요’에 남긴 이 문장에는 조선 왕들이 공부해야 할 이유가 집약돼있다. 책 ‘왕의 공부’는 조선 왕들의 공부 이유를 ①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②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③정확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로 나눈다. 모든 권력이 집중되지만 능력이 아닌 혈통에 의해, 그것도 통상 적장자가 세습하는 왕의 입장에서 공부는 국가의 운명과도 연결된다.

책은 조선 왕들의 공부 이유 외에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흔히 알고 있듯 조선 왕들은 사서삼경과 역사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책은 이를 ‘주경익사(主經翼史·경전에 역사라는 날개를 달아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실용서에 가까운 공부도 곁들였다.

이중 당 태종의 정치를 기록한 ‘정관정요’가 조선 왕들 사이에서 꾸준히 읽혔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점이 있다. 당 태종이 친형과 친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끌어내린 전력이 있어 유학자들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왕과 신하들이 이를 각자 입장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왕의 입장에선 당 태종이 군주로서 이룩한 업적이 있었고, 신하들 입장에서도 당 태종에게 목숨을 건 간언을 하는 위징의 내용이 정관정요의 상당수를 차지해 긍정적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세종과 성종의 경우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이유가 흥미롭다. 세종은 “중국어를 알고 있으면 명나라 사신과 만나 대화할 때 대답할 말을 생각해 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고, 성종은 “역관이 통역할 때 틀린 것이 많아 공부해두려는 것”이라 설명한다.

시대 상황에 따라 왕들이 강조하는 공부 내용이 달라진 적도 있다. 경연(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연마하고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에서 사서삼경 중 주역으로 알려진 역경을 압도적으로 많이 다룬 왕은 선조였는데, 당시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상황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란 게 책의 설명이다. 특정 과목에 자부심을 가진 왕들도 있었다. 영조는 ‘대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직접 서문을 써서 붙이기도 했다.

이밖에 사가(私家)에서 생활하다 늦은 나이에 보위에 오른 왕들은 경연 참가 횟수가 특히 저조했다는 내용 등 조선 왕의 공부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례와 에피소드가 책에 한가득 담겨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