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동현관에 이르러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기 딱, 5초전
가로등 색이 모두 달랐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은 노란색
조금 멀찍이 떨어진 여름나무 잎사귀 아래는 연두색
멀리 어둠 속에 내던져진 건 주황색…
한쪽으로는 흰색 등이 얼음처럼 일렬로 서있었고
꼭, 칵테일 같았다
여름밤이 내게 만들어준 칵테일 같았고
어쩌면 내가 만들어준 칵테일 같았다
오늘도 마스크를 끼고 보낸
숨이 턱 막히는 날의 귀가였지만
그 5초가 나를 살렸다고 생각하면
어머나,
아찔하고
짜릿했다
살면서 겨우
그런 게 좋았다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 중 황유원의 시
코로나19 이전 일상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있는 것들도 있다. 퇴근 후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 켜진 가로등 색깔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이전부터 각기 달랐을 것이다. 그 전에는 눈치를 챌 수 없었을 뿐. 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그 짧은 순간 제각각인 가로등은 여름밤이 만들어준 칵테일처럼 다가온다. 일본 쿠온 출판사에서 기획·출간한 시집을 한국어판으로 재출간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18개국 시인의 시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