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니 바닥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검은색 직선이 빼곡했다. 안내선을 따라가다 교차하는 선들이 만들어낸 사각의 공간에 걸음을 멈췄다. 각각의 사각 공간 앞엔 ‘믿음’ ‘소망’ ‘사랑’ ‘천지창조’의 주제를 가진 네 개의 전시공간이 있었다.
개인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열리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4전시실에서 만난 서자현(52)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 사각 공간에서 눈을 감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각자가 마음에 만든 공간에 따라 ‘보여지는’ 작품들을 각각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작가는 프랑스 파리 네프빌 콩트고등예술학교 창작텍스타일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에서 미술학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나스(NARS)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J&M스튜디오 소속인 그는 개인전 14회와 단체전 200여회 등을 갖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엔 서 작가가 작품에 담아온 신앙적 성찰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비기독교인에게도 익숙한 주제를 선정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각각의 주제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그리스도인의 믿음’ ‘신앙인의 삶에 피어난 소망’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의 결과물로서 천지창조’로 연결된다.
서 작가가 각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은 ‘중첩’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베를 짜듯 검은색 종이테이프를 가로세로로 겹겹이 붙인 후 그 위에 색을 입혔다. 일부 종이테이프를 제거하거나 추가로 붙인 후 다시 채색하는 작업을 반복해 검은 배경에 불규칙한 굵기와 색깔의 직선이 있는 원본 작품을 완성했다.
서 작가는 원본을 카메라로 찍은 후 디지털 작업으로 가공해 완전히 다른 모습의 사본을 만들었다. 그 위에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칠해 또 다른 사본을 만들었다. 하나의 원본에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사본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연작을 탄생시켰다. 2004년 이라크전쟁과 아프리카 여행 경험을 통해 미디어에 비친 모습과 실재의 괴리를 경험한 서 작가는 이후 작업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라는 성찰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 위에 작업한 재가공 작품은 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원본이기도 해요. 미디어가 주된 통로인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는 여러 의도와 의미가 중첩된 상태로 전달되죠. 어떨 땐 사본이 원본보다 더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도 해요. 가공된 이미지와 살아가는 우리는 그 무수한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비보이 홍텐(Hong10), 스트리트댄스 크루 프리즘무브먼트(FRZM movement)와 협업을 처음 시도해 작품의 영역을 넓혔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가로 7.5m 세로 2m의 LED 패널엔 각 주제를 표현한 댄서들의 춤 영상이 재생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장르와 협업은 현대미술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와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서 작가는 이번 전시가 기독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기독미술이 현대미술 안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신앙을 숨기지 말고 더 멋진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며 “기독미술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드러내기 위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