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신앙’… 기독미술의 나아갈 길 제시

입력 2020-12-03 03:01
서자현 작가가 1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4전시실에서 개인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니 바닥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검은색 직선이 빼곡했다. 안내선을 따라가다 교차하는 선들이 만들어낸 사각의 공간에 걸음을 멈췄다. 각각의 사각 공간 앞엔 ‘믿음’ ‘소망’ ‘사랑’ ‘천지창조’의 주제를 가진 네 개의 전시공간이 있었다.

개인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열리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4전시실에서 만난 서자현(52)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 사각 공간에서 눈을 감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각자가 마음에 만든 공간에 따라 ‘보여지는’ 작품들을 각각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작가는 프랑스 파리 네프빌 콩트고등예술학교 창작텍스타일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에서 미술학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나스(NARS)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J&M스튜디오 소속인 그는 개인전 14회와 단체전 200여회 등을 갖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엔 서 작가가 작품에 담아온 신앙적 성찰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비기독교인에게도 익숙한 주제를 선정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각각의 주제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그리스도인의 믿음’ ‘신앙인의 삶에 피어난 소망’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의 결과물로서 천지창조’로 연결된다.

서 작가가 각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은 ‘중첩’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베를 짜듯 검은색 종이테이프를 가로세로로 겹겹이 붙인 후 그 위에 색을 입혔다. 일부 종이테이프를 제거하거나 추가로 붙인 후 다시 채색하는 작업을 반복해 검은 배경에 불규칙한 굵기와 색깔의 직선이 있는 원본 작품을 완성했다.

서 작가는 원본을 카메라로 찍은 후 디지털 작업으로 가공해 완전히 다른 모습의 사본을 만들었다. 그 위에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칠해 또 다른 사본을 만들었다. 하나의 원본에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사본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연작을 탄생시켰다. 2004년 이라크전쟁과 아프리카 여행 경험을 통해 미디어에 비친 모습과 실재의 괴리를 경험한 서 작가는 이후 작업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라는 성찰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 위에 작업한 재가공 작품은 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원본이기도 해요. 미디어가 주된 통로인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는 여러 의도와 의미가 중첩된 상태로 전달되죠. 어떨 땐 사본이 원본보다 더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도 해요. 가공된 이미지와 살아가는 우리는 그 무수한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대형 LED 패널에 비보이 홍텐, 스트리스 댄스팀 프리즘무브먼트와 협업해 제작한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신석현 인턴기자

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비보이 홍텐(Hong10), 스트리트댄스 크루 프리즘무브먼트(FRZM movement)와 협업을 처음 시도해 작품의 영역을 넓혔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가로 7.5m 세로 2m의 LED 패널엔 각 주제를 표현한 댄서들의 춤 영상이 재생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장르와 협업은 현대미술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와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서 작가는 이번 전시가 기독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기독미술이 현대미술 안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신앙을 숨기지 말고 더 멋진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며 “기독미술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드러내기 위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