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세런디피티와 코로나19 백신

입력 2020-12-03 04:02

영어 ‘세런디피티(serendipity)’는 ‘우연한 발견’ 혹은 ‘뜻밖의 행운’이란 뜻을 갖고 있다. 위키백과사전에는 18세기 영국 문필가 호러스 월폴이 처음 사용했다고 돼 있다. 특히 과학 연구에서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것을 지칭할 때 쓰인다.

영국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항생제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플레밍은 1928년 여름 실험실 창가에 둔 포도상구균 배양접시에 푸른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그 주변에 균이 자라지 않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는 학계에 보고했다. 그 푸른 곰팡이가 수많은 인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 연장에 기여한 페니실린의 시초다.

세계 첫 예방백신의 탄생도 세런디피티로 볼 수 있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는 1796년 당시 치명적 전염병인 천연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소젖을 짜는 일꾼들의 경우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걸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두(소 천연두)’에 걸린 암소의 고름 딱지를 떼내 가정부의 8살 아들 어깨에 주입했다. 소년은 접종 후 미열이 있었지만 감염이 일어나지 않고 수일 뒤 건강을 되찾았다. 나중에 다시 실험했을 때도 감염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최초의 예방주사인 종두법은 이렇게 정립됐다. 초창기 영국 의학계는 제너의 행위를 ‘미친 짓’이라며 혐오했지만 곧 인정을 받아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백신(vaccine)’이란 용어도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비롯됐다.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만들고 180년이 지난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촌에서 천연두의 완전 박멸을 선언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상당수는 우연이나 실수, 실패에서 시작됐다. 다만 그 안에서 중요한 뭔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필요했고 오늘날의 의·과학 기술 발전을 이루는 추동력이 됐다.

코로나19가 인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현 상황은 어쩌면 18세기 제너가 살던 시대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세런디피티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개발 중인 백신(2회 접종)의 3상 임상시험 초기 데이터 분석 결과 1회분은 정해진 양의 절반을, 2회분은 온전히 투약한 그룹의 면역 효과가 90%로, 두 번 다 온전한 분량을 투여한 그룹(62%)보다 높게 나왔다. 평균적으론 70% 예방 효과를 보였다.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아스트라제네카의 최고책임자는 “1회분의 절반을 접종한 것은 행운(serendipity)이었다”고 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임상시험용 백신 제조 과정에서 연구원이 착각해 정해진 양의 반만 넣었다고 한다.

백신 전문가들은 의약품 임상시험에서 원래 설계대로 하지 않는 건 상상할 수 없고 심각한 실험계획 이탈이라고 말한다. 제약사는 결국 추가 임상시험을 진행해 우수하게 나온 ‘저용량 방식’의 예방 효과를 재입증하겠다고 밝혔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만약 똑같은 효과가 재현되고 그 면역 기전이 합당하게 설명된다면 그들 말처럼, 또는 역사적으로 있어 왔던 세런디피티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저용량인 만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접종할 수 있고 부작용이나 비용 감소 효과도 기대돼 다른 백신에 비해 유리한 면이 많아진다.

이 백신은 한국 정부가 선구매 협상 등을 통해 구입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평균 70% 예방 효과도 높은 편이어서 확보 노력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다만 백신 확보는 서두르되 향후 접종은 추가 임상 결과를 지켜봐가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